|詩| 주말 연속드라마

서 량 2010. 2. 8. 22:38

 

 이제 당신은 아무 것도 의미할 수 없어. 다만 무언가를 암시하는 데서 그칠 뿐. 파도가 일렁인다. 파도가 당신에게 흰 이빨을 보이며 덤벼드네. 저 짜디 짠 물거품에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어. 다만 바다와 지구와 우주와 당신의 검붉은 자궁이 작동,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작동할 뿐. 밤 구름이 밤 별을 완전히 덮어버린 밤하늘에게 덤벼드는 밤바다를 오래 동안 보았지. 나도.

 

--자매님, 왜 나와 있어요. 바닷바람이 찬데요.

수녀님, 왜 안 주무시고 나오셨어요.

방에 안 계시길래 걱정했어요.

그냥... 밤바다 보고 싶어서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수녀님 걱정 마세요. 다시는 저 그런 짓 안 해요.--*

 

 당신이 부재하는 당신 방에 바닷바람이 분다. 바닷물이 따스하다. 당신 아랫배만큼 말랑말랑해. 이제 고전음악이 두터운 막을 내리고 5인조로 구성된 재즈악단이 주섬주섬 악기와 스피커를 설치한다. 조용하다. 객석이 텅 비어있는 주말 오후. 악사들이 너무 젊어. 농구선수같이 몸매 늘씬한 대리모(代理母)와 눈매 고운 수녀가 손을 맞잡는다. 두 여자의 손가락 스무 개가 파도 위에 얹힌다. 배경음악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 그 장면이 당신에게 무슨 엄청난 메시지를 전했다고는 생각하지 마. 이처럼 시간과 사랑이 썰물처럼 사라지는 나른한 주말에.

 

* SBS 주말 연속극 <천만번 사랑해>에 나오는 대사

 

© 서 량 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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