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9. 몸과 마음과 의사

서 량 2010. 1. 31. 21:51

서기 1세기와 2세기에 걸쳐 로마에서 풍자시(satire)의 거장으로 명성을 떨친 주베날(Juvenal)의 시 중에 '건전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이라는 구절이 있다. 몸이 튼튼하면 마음도 튼튼해진다는 단순한 뜻 같지만, 주베날은 당시 로마의 사회구조에 대하여 빈정대는 시를 워낙 많이 썼기 때문에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하여 아직도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마음이 앞장서면 몸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혹은 임산부의 입맛처럼 몸이 원하다 보니 마음이 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몸과 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충동질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 속담, '얼굴 일색이 마음 일색만 못하다'는 몸보다 마음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뭇 성형외과의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옛말에 의원(醫員: 의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루한 속언이 있다.

 

의원에는 첫째가 심의(心醫: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의사), 둘째가 식의(食醫: 식사를 잘 하도록 해주는 의사), 셋째가 약의(藥醫: 약으로 치료하는 의사), 넷째가 혼의(昏醫: 환자 마음을 어지럽히는 의사), 다섯째가 광의(狂醫: 미치광이 의사), 여섯째가 망의(妄醫: 망령된 의사), 일곱째가 사의(詐醫: 사기꾼 의사), 여덟째가 살의(殺醫: 사람 죽이는 의사)이노라.

 

위의 여덟 부류 중에서 제발 당신과 나는 첫째, 둘째, 셋째에 해당하는 의사들만을 평생 상종하기를 간절히 기원할지어다.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첫째로 손꼽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또 옛말에 '의원은 일구(一口), 이족(二足), 삼약(三藥)이다'라는 격언도 있다. 의사는 첫째 말을 잘해야 하고, 둘째 발을 자주 놀려 환자를 방문해야 하고, 셋째로 약을 잘 써야 한다는 뜻으로서 말(마음)이 몸을 지배함을 시사하는 명언이다.

 

고대영어에서 'body'는 사람이나 짐승의 '몸통'이라는 의미였고 13세기 중엽부터 '영혼'의 반대에 해당되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양키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흑백논리의 이분법으로 구별했다. '심신(心身)이 편안하다'는 표현에서처럼 우리들 또한 마음과 몸을 차별하며 살아 왔다.

 

'몸 신()'자는 상형문자로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자사전은 풀이한다. ''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이를 밴 여자가 왼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동양의 몸은 임산부의 몸이다. 우리 모두는 여자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마음 심()을 풀이한 수많은 해석 중에서 그릇에 세 개의 점이 찍혀 있다는 시각이 흥미롭다. 20세기 초반에 프로이드 왈, 인간의 마음이란 본능(id)과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라는 삼대요소가 우리의 심리와 행동의 귀추를 결정한다고 설파했다. 이 묵직한 삼대요소를 담고 있는 그릇의 용량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mind'는 고대영어에서 기억(memory), 생각하기(think), 또는 의도(intention)라는 뜻이었다. 마음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생각해서 미래를 의도한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은 시간을 관통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을 남들에게 'Thank you'라 말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thank' 'think'가 같은 말 뿌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얼마나 절감하며 지내는가. 감사한다는 것은 즉 생각한다는 것임을.

 

서구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은 상대의 친절한 행동을 기억하고 오늘도 내일도 생각에 담아두겠다는 의도를 밝히는 생활습관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과거, 현재, 미래를 여유만만하게 넘나들고 있다.

 

 

© 서 량 2010.01.31

-- 뉴욕중앙일보 2010년 2월 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