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6. 타이거 우즈 스캔들

서 량 2009. 12. 18. 22:55

 요사이 타이거 우즈의 'transgression'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칫 쓸쓸해지기 쉬운 연말에 이런 쏠쏠한 스캔들은 사람들 마음에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여성행각에 대한 소식은 당신도 나도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불안감을 잊게 한다. 지금까지 열댓 명의 여자와 혼외정사를 가졌다는 우즈는 지금 그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미디어는 이제 'transgression'처럼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쉬운 말로 그냥 'sex scandal'이라 한다.

 'transgression''위반'이라는 뜻. 'trans' 'transverse: 가로지르다', 'transport: 운송하다', 혹은 'translate: 옮기다' 에서처럼 동적(動的)인 의미를 내포한다.

 부부 중에 한 쪽이 상대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뜻하는 'infidelity: 부정(不貞)'라는 어려운 단어가 있는데 16세기 초 라틴어의 'infidelitas'에서 파생된 말로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기독교에서 혼외정사를 백안시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무질서를 규탄하는 개념이었고 그 바람직한 인류의 규범은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한국 연속드라마에 범람하는 주제로서 불륜적인 남녀관계를 영어로는 'affair'라 한다. 13세기경 고대 불어의 'afaire'는 무엇을 '하다' 혹은 '이루다'는 뜻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다'라는 말은 남녀의 교합(交合)을 연상시킨다.

 교감(交感), 교제(交際), 교접(交接), 교배(交配), 교미(交尾), 교섭(交涉), 절교(絶交), 성교(性交)에 쓰이는 한자말 '()'는 우리말로 '사귈 교'라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교차로(交叉路)에서처럼 '' '어긋나다'라는 뜻도 있다. 네이버 한자사전은 교()라는 상형문자가 사람의 종아리가 교차해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라 풀이한다. 정교한 손이 아니라 민숭민숭한 종아리들이 교차하다니! 중국식으로라면 남녀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대신에 서로 종아리를 걸치는 예절 바른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지 않는가.

 사람의 마음이란 평행선을 이루기보다는 얽히고 설키고 어긋나는 사이에 긴밀하게 엮여진다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고로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알쏭달쏭한 법이거늘. 어느 시인의 시에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쯤 되면 '당신 마음을 몰라서 미안하다'라는 진술도 나올 법 하다.

 혼외정사를 영어로 'extramarital affair'라 한다. 점잖은 한자로는 외도(外道)라 하고 직설적으로는 오입(誤入)이라 한다. 전자는 바깥길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잘못된 들어감으로 풀이된다. 잘못 들어가다니!

 암수를 불문하고 동물들은 방종한 행동을 일삼는다. 특히 수컷들은 사방팔방에 씨를 뿌리려 하는 생물학적인 근성이 있다. 그들은 앙큼한 유혹보다는 맹렬한 행동을 추구한다. 당신은 금단의 열매에 먼저 살짝 손을 댄 이브를 기억하는가.

 유혹을 한 사람보다는 유혹에 대뜸 응함으로 규범을 위반한 사람이 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가 우리 사회의 추세다. 그래서 남자 목 앞에 튀어나온 연골을 사과가 목에 걸렸다 해서 'Adam's apple'이라 한다. 대단한 형벌이다. 아담은 지금껏 사과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타이거 우즈는 아주 동적(動的)인 인간으로 보인다. 골프채로 골프 공을 힘차게 때려서 구멍 속에 공을 집어넣는다는 행위 자체가 성적인 면목을 암시한다. 골프의 황제가 하루 아침에 섹스 스캔들의 황제로 변모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당연한 귀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특히 눈보라가 휘날리는 한해의 마지막 달쯤 해서는.

 

© 서 량 2009.12.18

-- 뉴욕중앙일보 2009년 12월 2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