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8. 새해에 부르는 '아! 옛날이여'

서 량 2010. 1. 18. 07:43

 벌써 새해 1월의 반 이상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1월 달을 영어로는 'January'라 하는데 모음이 세 개나 들어간 말이라서 입술 놀림이 아주 분주한 단어다.

 

 'January'는 로마신화의 'Janus'에서 비롯됐다. 영어발음은 '제이너스'인데 우리는 굳이 독일발음으로 '야누스'라 한다. 'Janus'는 또 건물 입구나 모든 이벤트의 시작을 관장했다. 바로 그런 뜻에서 빌딩이나 학교의 입구를 보살피는 'janitor(건물관리인; 수위)'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영어보다 독일발음을 선호하는 당신은 '재니터'라 하지 않고 이것도 '야니토'라 발음하겠는가.

 

 'Janus'는 시작과 끝을 맡아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는 얼굴이 둘이다. 하나는 앞을 바라보고 다른 하나는 뒤를 보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탁월한 능력이면서 과거의 끝과 미래의 시작이 공존하는 현재를 대변한다.

 

 'Janus-faced'는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이른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에 미국 티브이 시리즈 'Incredible Hulk (믿을 수 없는 덩치)'를 한국에서 방영할 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을 썼던 기억이 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방불케 하는 말이다.

 

 타임즈 스퀘어에서 시간의 공(ball)이 카운트다운하며 땅으로 내려와 새해가 열리는 순간에 양키들은 왜 느닷없이 'Auld Lang Syne'이라는 노래를 부르는가. 이 옛날 스콧랜드 영어를 현대 영어로 번역하면 'Old Long Ago'이고 가사인즉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우리 노래로는 이선희의 '! 옛날이여'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역설인가. 새해가 막 당도한 순간에 새해는 자기를 기꺼이 환영하는 대신에 지난해를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작태를 보면서 얼마나 섭섭한 기분이 들까.

 

 'start'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영어의 'steortian'에서 출발한 이 말은 펄쩍 뛰거나 돌진한다는 뜻이었고 현대영어로 'startle'16세기부터 깜짝 놀란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개구리가 펄쩍 뛰거나 간난아이가 깜짝 놀랐을 때 생기는 에너지가 어떤 시작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end'는 고대영어 'ende'와 고대독일어의 'enti'에서 반대쪽이라는 뜻이었고 같은 말 뿌리에서 현대어의 'anti'가 파생됐다. 그래서 항생제를 'antibiotic'라 한다. 서구적인 끝에는 그렇게 반항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우리말 속어로 '끝내주다' 할 때의 아주 흡족한 상태라는 의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똥꿈을 꾸면 재물이 생기거나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 우리의 고전적인 해몽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더럽기만 한 똥이 꿈으로 반영될 때는 어처구니 없이 좋은 의미가 되는가. 표리부동도 유분수지, 이런 우리 의식구조의 이중성을 당신은 극과 극이 일맥상통하는 법이라고 우물쭈물 밀어 부치겠는가. 차라리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어떤가.

 

 프로이드는 <문명과 그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 1939)에서 인류의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성적본능이나 공격본능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로 억제 당하며 사회적 규범에 복종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문명사회는 불만과 불안의 씨앗을 잉태한다. 우리는 미래가 시작되는 순간 과거를 노래하는 이중성 때문에 문명이 활개를 치는 시절에 천둥벌거숭이의 원시사회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 하지 않았던가.

 

© 서 량 2010.01.17

-- 뉴욕중앙일보 2010년 1월 2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