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입춘의 말 / 김정기

서 량 2022. 12. 13. 18:31

 

입춘의 말

 

        김정기 

 

땅속에서 벚꽃이 피어

속삭이고 있다.

진달래의 비릿한 냄새 스며들어

신부를 맞으려고

흙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작년에 떨어진 봉숭아 씨앗이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연노랑 웃음을 감추고 있다.

몸 안에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수 천 년 가두어 둔 바람이 새 옷을 준비하고

덜 깬 잠에서 흐느끼고 있는 벌레가

나비의 발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꿀벌의 몸짓으로 노래 부른다.

 

지하에 준비된 봄의 언어를

목청껏 뱉어보는 새벽

품에서 자란 새들이 날개를 달고

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을 물고

반드시 약속은 지키겠노라는

입춘의 말을 듣고 있다.

 

© 김정기 201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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