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겨울, 무대에 서다

서 량 2010. 1. 8. 13:55

 

겨울이 아까부터

왼쪽 무대 뒤쪽에서 검붉은 커튼 앞으로
어줍잖게 걸어 나와, 오른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오른쪽으로
얼른 사라지는 역할을
리허설하고 있네

황금색 겨울바람 속에서

 

겨울은 아카데미 수상식에

물개 살갗 같은 새카만 턱시도를 입고
자기 자리에서몰래 복식호흡을 하며 
 
반짝이는 조연상을 받을 기대심으로

자기 본심을, 자기의 절실한 소망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지

 

서서히 멸종하달걀색 북극백곰처럼
겨울은 진작에 무대체질이 아니었나 봐 

등뼈를 꼿꼿이 고추세운 채, 보라는 듯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참이지만

 

 

© 서 량 20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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