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5. 말, 말, 말

서 량 2009. 12. 8. 13:51

악기가 좋아서건 연주자의 기법이 좋아서건 듣기에 좋은 소리가 나올 때 당신은 '저 톤(tone)이 참 좋아요' 할 것이다. 그냥 '소리'가 좋다고 말을 해도 되기는 되겠지만 그런 말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별로 감칠맛이 나는 말이 아니다. 이를테면 듣기에 기분 좋은 남자 목소리를 '바리톤(baritone)'이라 해야지 어찌 '바리소리'라고 하겠는가.

 

''에서 '(tune: 음의 높낮이)'이라는 말이 파생했고 피아노 조율하거나 오케스트라가 시작하기 전에 악기들끼리 음정을 서로 맞추는 것도 '튠닝(tuning)이라 한다.

'tone'14세기 중반에 라틴어와 희랍어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다 (stretch)'는 뜻이었다.

우리 말에도 억양(抑揚)이라는 말이 있는데 언어의 상대적인 높낮이를 분별하는 말 습관을 지칭한다. 비슷하게는 어조(語調)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말은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야, 그 곡이 무슨 조(調)? 물어 보면 이를테면 아, 그거 D 마이너야, 하는 대답이 나올 법도 하다. 조를 영어로는 'key'라 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도 어조에 따라서 D 마이너 키가 나올 수도 있고 A 메이저 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은 말이라기보다 음악에 더 가깝다. 강아지가 주인의 말을 고개를 갸우뚱하며 본능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이치일 것이다.

영어를 할 때 본토 양키들과 외국인이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인토네이션(intonation)'이다. 불란서 사람은 불란서 인토네이션을, 쏘련 사람은 쏘련 식,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식,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식 인토네이션을 쓰게 마련이다. 태어난 땅의 위치에 따라 노래 소리도 다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라는 격언이 있다. 도대체 말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말을 잘하기 위하여 쩔쩔매고 있는가.

한국에서 남자들끼리 말싸움이 붙었을 때 한쪽에서 '당신 말 다했어?' 하는 수가 있다. 말을 다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행동? 무슨 행동일까. 아마도 치고 박고 하는 쌈박질이겠지. 그러길래 한쪽에서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하지 않는가. 말이야말로 신사와 깡패를 분별하는 첩경이다. 오래 전 서희 장군이 전쟁을 말로 해결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은 영어의 'word'에 해당 된다. '말로서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라는 말이 있다. 양키들도 마찬가지로 복수적인 말을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They exchanged words with each other. (그들은 말들을 서로 교환했다)' 하면 그들이 말싸움을 했다는 뜻이다.

이때 물론 'words'는 복수. 즉 말이 많은 광경이다. 반면에  'May I have a word with you?' '말씀 좀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는 아주 정중한 발언이다. 이때는 'a word'는 깍듯한 단수다. 가능하다면 당신이나 나나 말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우리 말의 말투와 말씨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말투는 우리말과 한자의 복합어로서 정확하게는 '말투()'라 써야 한다. 이때 ''를 옥편은 '덮개 투'라 해석한다. 옛날 말로 말투를 한자로 구적(口跡)이라 했는데 이것은 입의 흔적을 뜻한다. 발자국만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다. 당신이나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흔적을 남긴다.

말씨는 또 어떤가. 사전은 말씨를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색깔'이라 풀이한다. 말에도 씨가 있다니. 말이 무슨 호박 씨인가 수박 씨란 말인가. 말의 씨에서 말의 자녀들이 줄줄이 태어난다는 말인가.

 

© 서 량 2009.12.07

--뉴욕중앙일보 2009 12 10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