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4. 방, 방, 방

서 량 2009. 11. 24. 13:49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너무 바빠 머리를 깎지 못하고 결국 한국 번잡한 동네에서 이발소를 찾아 다니다가 깜짝 놀랐다. 이발소 간판에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써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발소가 24시간 손님을 받는다니.

 

 한 청년이 머리 깎으러 오셨습니까, 하더니 이리 오십시오, 하며 양손을 뻗치면 양쪽 벽이 손끝에 닿을 듯한 골방으로 나를 안내하더라. 프라이버시 하나만은 끝내주는 방이었다.

 

 잠시 후에 슬쩍 물어 보았다. 24시간 영업을 한다면 이를테면 새벽 3시에 머리를 깎으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 녀석 왈, 24시간을 아가씨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속으로 차라리 이발소라고 하지 말고 간판을 '이발방'이라고 하면 어떠냐 하는 생각을 했다. 협소한 여관방처럼 보이는 직사각형의 방에서 오밤중에 아가씨들이 남자들의 머리를 시퍼런 가위로 자른다고? 

 

 몇 년 전 이어령 석학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소규모의 모임이 있었는데 대담의 화제 중에 우리의 문화는 "()의 문화"라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는 다방도 많고 노래방, PC, 고시방, 하숙방, 찜질방, 피부방, 게임방, 비디오방, 소주방, 기타 등등, 예를 더 들면 입만 아프다.

 

 'room'은 고대영어로 'rum'이라 했는데 공간(space)이라는 뜻이었고 그 말의 뿌리인 전인도유럽어 'rew-' '활짝 트인(wide open)'이라는 형용사였다. 서부 영화의 살롱처럼 양키들의 방은 개방된 공간이다.

 

 구글 검색에 ''을 넣어 봤다. 그랬더니 우리 단편소설의 거장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1907-1942)이 쓴 글 중에 "방이란 한없이 신비로운 것이니 그 곳의 생활은 언제든지 외부에 대하여 닫혀진 비밀이다." 라는 인용문이 나온다. 이 같은 방의 은유는 자궁(子宮)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방은 밀폐된 처소다. 닫혀진 문 뒤쪽의 비밀공간이다. 유방(乳房)과 운율이 같은 규방(閨房)도 아주 은밀한 내막을 감추고 있다.

 

 세세손손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 흐르는 자폐증 증상이 가미된 문화가 의 문화다. 대원군은 대한반도 전체를 방으로 만들어 쇄국주의(鎖國主義) 사상을 주장한 우리의 대변인이었다. 양키들이 생명을 불사하고 광활한 들판에서 들소를 사냥하던 시절에 우리는 안방과 건넛방이며 사랑방을 기웃거리며 공자왈맹자왈 하며 방 속에 콕 박혀있는 '방콕'생활을 즐겼던 것이다. 옛날 한국의 농경사회의 겨울을 덮어주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이부자리를 펼칠 수 있는 안방이었거늘.

 

 우리 어렸을 적 멋진 한식집은 미음()자 모양으로 사방이 담으로 둘러 쌓인 구조였다. 잘 사는 집일 수록 담이 높고 담 위에 철조망과 유리조각을 시멘트에 많이 박아 놓았던,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공포에 질린 우리의 생활양식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둑이 무서운 삶을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땅을 침범하려는 파렴치한 도둑놈들을 두려워하면서 살아 왔던가. 아직도 일본 놈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간사한 언성을 높이고 있지 않는가.

 

 고시방이 있고 독서실이 있고 박물관이 있듯이 방의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그 뜻도 다양해지는 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박물관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찜질방이나 노래방을 더 자주 드나든다. 머지 않아 이발소보다 이발방이 더 인기를 끌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전 벽이 온통 반짝이는 거울로 덮여 있고 여러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면을 슬금슬금 살펴 볼 수 있었던 그 옛날의 이발관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 서 량 2009.11.23

--뉴욕중앙일보 2009 11 2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