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다움>에 들어갔더니 무슨 광고가 뜨면서 '옷을 엣지있게 입으세요'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이것은 마치도 '엣지있다'가 문법적으로 일종의 형용사(形容詞)처럼 들렸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어리둥절할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이 이럴 때 꼭 어리둥절해지라는 법은 없지만.
구글 검색을 해 보았더니 이 말은 'edge있다'는 식으로 영어와 우리말이 합쳐진 조합어인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말이 가능하다니. 사연인즉 한국 티브이 SBS에서 요사이 주말 연속 드라마 '스타일'에 나오는 배우 김혜수가 즐겨 쓰는 말에서 '엣지있다'는 신종 유행어가 생겼다는 것.
'edge'는 가장자리, 변두리, 모서리라는 뜻. 한국에서 팽배하는 반미주의 추세는 어디로 가고 우리는 이렇게 발음도 이상하게 말끝마다 영어를 쓰는가. 대충 말해서 '엣지있다'는 폼이 날카롭거나 튄다는 뜻이 되겠는데 다 좋지만 다만 제발 발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옛날에는 'Manhattan'을 '만하탄'이라 했지만 최근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맨해튼'이라고 영어 발음 그대로 충실하게 표기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굳이 'edge'를 발음 그대로 편안하게 '에지'라고 하지 않고 '엣지'라고 'd'가 묵음(默音)인 것을 무시하고 일부러 애써 발음을 해야 하는가. 판사라는 뜻의 'judge'에서도 'd'를 발음하지 않고 그냥 '저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구태여 '젓지'라 발음하겠는가?
'edge'는 고대영어에서 '칼'이라는 뜻이 있었고 전인도유럽어로는 날카롭고 뾰족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다가 16세기경에 급하고 자극적이라는 뉘앙스가 가미됐다. 현대어로 'on edge'는 신경과민 비슷하게 안절부절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아뿔싸! 바로 그런 그늘진 암시에서 성적(性的)인 의미마저 생겨난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한 인간이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마치도 벼랑 끝에 서있는 위기감각으로 안절부절하는 것이 통례가 아니던가.
에지는 19세기에 초조하고 신경질적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고등교육을 받은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 'edge'의 형용사인 'edgy'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는 감정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돼버렸다.
에지에서 'cutting edge'라는 말이 1950년도 초반에 파생됐다. 우리말로 '최첨단'이라는 뜻. 그리고 90년도 중반에 'bleeding edge (피 흘리는 가장자리)'라는 슬랭이 컴퓨터 용어에서 생겨났다. 칼로 자른 첨단에 서있다가 날카로운 에지에 찔려 피를 흘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리라.
'over the edge'는 정신이 나갔거나 미쳤다는 뜻이다. 정신이 나갔다니, 정신이 어디로 외출을 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도 절벽 끝에서 언뜻 생각을 잘못해서 깜박하는 순간에 사람 몸이 허공에 낙엽처럼 날리는 정경이 떠오르는 표현이다.
그래, 좋다. SBS의 김혜수가 자기가 하는 말의 본 뜻과 유래를 제대로 알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엣지있는' 말 습관은 좀 'rough around the edges' 한데가 있다. 덕분에 나도 영어를 한 번 써 볼까나. 'rough around the edges'는 사람의 태도나 말이 세련되지 않고 조잡하고 쌍스럽다는 의미다.
"김혜수여, 부디 자중할지어다!" 라고 말하려다가 잠시 주춤한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요즘 세태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미치고 환장하게 안절부절하며 엣지있게 지내기 때문에 차라리 안절부절한 꼴이나 태도가 좀 더 폼나고 섹시해 보이는 건 혹시 아닐지.
© 서 량 2009.10.12
--뉴욕중앙일보 2009년 10월 14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09/10/13/society/opinion/9234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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