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책
김종란
아직은 다 읽지 못한 책, 가을
다시 받아 들고 손끝으로 지난 지문들을
더듬어 익히며 옛 향기 흠, 흠 들이마셔
가슴에 품어보고 마음의 어둑한 서고에
가지런히 꽂아 보기도 하고
미쳐 넘겨보지 못한 채 멈춘 그 페이지
그 生生한 우울에서 시작해
크고 검은 눈망울이 뚜렷한 엉클어진 짧은 머리
큼직한 배낭을 매고 소매엔 약간 때가 묻은 분홍빛 손
꿈꾸는 너 다시 만나 불 붙어도 향기로운 가을 나무 곁을
익숙한 발자국으로 머무르던 곳 서성이던 곳을 지나치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 넘기는 오래된 책
석양의 시간은 멈춰진 듯 느리고 붉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 더욱 선명하게 가을은
변주된다
웅크린 어둠은 저 곳에 머물게 하고
오래된 이야기 책
빛으로 지금 지나는 우리에겐 처음인 이야기
이 아까운 이야기에 몰두한다
페이지가 지워지며 네가 성큼성큼 걸어 나갈 때까지
© 김종란 2009.09.29
'김종란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선의 끝 *히비스커스 / 김종란 (2) | 2022.12.07 |
---|---|
간결한 식사 / 김종란 (1) | 2022.12.06 |
의자와 시계 고양이 / 김종란 (0) | 2022.12.03 |
퍼즐 / 김종란 (0) | 2022.12.02 |
검은 소는 없다 / 김종란 (1) | 2022.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