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며칠 안 되는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경찰에게 잡힌다. 양키가 뭐라고 쏼라쏼라 하는데 대강 눈치로 때려잡은 이 친구는 '한 번만 봐 주세요'를 'See me once'라 말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나이 먹은 교통순경은 왕년에 한국에서 군대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 콩글리시의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국물도 없어'라는 뜻으로 'No soup'이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우리는 상대에게 너그럽게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심정일 때 '봐 달라'고 말하는 언어습관이 있지만, '국물도 없어'라는 관용어는 어쩐지 수상하게 들린다. 그것은 마치도 어떤 요구를 한 사람이 거지 취급을 당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 육이오 참전용사에게 농담을 걸기 위해서 '국물이 없으면 건더기는 있나요' 라고 영어로 말하고 싶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한영사전을 찾아 봤더니 '건더기'는 'solid material in the soup (국 속의 딱딱한 재료)' 혹은 'substance(내용)'이라고 나와 있다. 우습다. 한 마디로, 건더기라는 뉘앙스에 걸 맞는 영어는 없다는 결론이다.
국물과 건더기의 차이가 무엇이 그리 빅딜인가. 내친김에 '김치국물부터 마시지 말아라'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냐고? 'Don't drink kimchee soup as yet'! 그 육이오 참전용사 교통순경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일까?
'It's a piece of cake (그건 케이크 쪼가리야)'는 의역으로 '누워서 떡 먹기' 라고 해석해야 한다. 누워서 떡을 먹다니! 게으름의 소치인가. 우리 선조들은 몸에 기운이 없어서 앉은 자세로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는 이론인가. 'cookie'도 비유에 자주 쓰인다. 'That's the way cookie crumbles (그게 과자가 부서지는 법이다)'는 세상 일이란 다 그렇고 그렇다는 뜻.
손쉬운 일을 1990년도에 생긴 슬랭으로 'cake job'이라 한다. 양키들의 케이크는 우리의 떡이다. 우리는 떡 같은 함수탄소의 미각에 연연했고 양키들은 달디 단 케이크를 밝혔다. 그래서 양키들은 마약 딜러를 슬랭으로 'candy man'이라 하고 젊은 여성이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를 정부로 삼은 경우를 1926년부터 'sugar daddy'라 불렀다. 마찬가지 논법으로 애인을 호칭할 때 'sweetheart', 또는 'honey'라 하지를 않나.
우리의 떡에 대한 집념은 참으로 대단하다. 모든 의미가 떡으로 통한다.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이 크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미친 척하고 떡 가게에 엎드러진다' 같은 속담에서처럼 우리의 떡 문화는 완전히 체질화 돼 있다.
'떡을 치다'라는 말 또한 당신의 관심을 몰래 불러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미는 '어떤 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쩔쩔매거나 망치다' 외에도 '남녀가 성교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떡은 그만큼 우리의 정서와 희비애락을 낯이 뜨거울 정도로 속되게 묘사한다.
쉐익스피어의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Merry wives of Windsor: 1602)>에 나오는 'The world is my oyster'는 지금도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The world is your oyster' -- 너는 세상일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같은 먹거리 이야기지만 떡에 국한된 사고방식에 비하여 바다 비린내 물씬한 비유가 많이 신선하지 않은가. 본래 명품은 손상이 좀 가도 역시 훌륭하다는 뜻의 우리 속담, '썩어도 준치'는 어떠냐고? 아, 그것 또한 신선하네.
© 서 량 2009.09.01
--뉴욕중앙일보 2009년 9월 2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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