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국 TV 톡쇼에서 한국인들이 "오 마이 가드!" 하며 놀라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우리 귀에 친숙한 '하느님 맙소사'라는 말도 있고 야, 아이구, 하는 간투사도 있는데 발음도 신통찮은 영어로 시끌벅적하게 신을 찾는 광경이라니!
양키들도 'Oh, my God!' 하기보다는 좀 완곡하게 '오'를 빼고 'My God!'라 한다. 그냥 'God!'라 해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야! 날씨 참 좋다'를 'God, it's a beautiful day!'라 한다. 내 말을 믿어다오, 오 마이 가드의 떠들썩한 신봉자들이여.
한국 남자들은 터프한 사내들이라 놀랐을 때 어머니를 거론하지 않지만 여자들 입에서 쉽사리 튀어나오는 말로 '어머!' 혹은 '어머나!'가 영어의 '(오 마이) 가드!'에 해당되리라.
그렇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아내와 딸과 누이들은 감정이 북받쳤을 때 정체불명의 신보다는 신원이 확실한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는 어머니의 유아어(幼兒語). 이것은 걸핏하면 신을 들먹이는 양키들보다 얼마나 인간적인 우리 고유의 언어습관인가.
'엄(母)'은 '어머니'의 옛말. '엄'에 '아'가 붙어서 '엄아'이었다가 '엄마'가 됐다. '영숙아, 철수야’ 할 때 '아'와 ‘야’를 호격조사라 한다. 우리는 엄마에 호격조사가 이미 들어갔음에도 기어이 다시 '야'를 붙여 엄마야! 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어떤가. '압(父)'은 '아버지'의 옛말. '압'에 호격조사 '아'가 안 붙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아빠'는 '아버지야!'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발언이다. 아빠도 엄마처럼 호격조사를 중복해서 '아빠야!' 한다.
'mother'는 고대영어의 'modor'가 16세기에 변한 말로서 전인도유럽어의 'mater'에서 유래했다. 'mater'는 현대영어로 모교(母校)라는 뜻의 'alma mater'에 원본 그대로 쓰이고 있다. 'mother'의 유아어는 'mamma'다. 엄마와 마마는 발음이 거진 똑같다.
어떤 언어이건 엄마라는 말에서는 한결같이 'm'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감미로운 비음(鼻音)이다. 'm'은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물(水)'이라는 뜻이었다. 자세히 보면 'm'은 물결 모양이다. 생명의 원천인 물!
중세 영어 'father'를 희랍어와 라틴어는 똑 같이 'pater'라 했다. 아버지의 ‘비읍’ 발음도 그렇지만 'f'나 'p'는 말랑말랑한 비음이 아닌 거센 마찰음 또는 파열음이다. 'f'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무서운 곤봉이나 갈고리를 상징했다. 한자의 아비 부(父)도 가장이 회초리로 집안을 다스리는 모습이라 한다.
로마 신화의 'Jupiter'는 모든 신들의 'CEO'로서 신의 아비(pater)라는 의미였다. 이 말은 1290년에 태양계의 행성 중 가장 덩치가 큰 목성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가장 큰 사람의 명칭인 것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미들이 자식을 위한 사랑에 몰두했다면 아비들은 질서유지를 위한 엄격한 교관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대두한 근대의 세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어찌하랴.
아빠에 해당하는 유아어로 'papa'가 있다. 아빠와 발음도 참 흡사하다. 홀아비가 딸을 달래는 앙드레 끌라보(Andre Claveau: 1915~2003)의 샹송 '아빠와 함께 춤을(Viens Valse Avec Papa)' 당신은 기억하는가. 어미가 없는 집에서 아비가 딸아이를 달래는 노래. 아이는 자꾸 깔깔 웃고 아비가 자장자장하며 재우려 하자 '아빠 나는 아직 안 자요' 하고 종알거리는 모성부재(母性不在)의 그 서글픈 끝부분을.
© 서 량 2009.09.28
--뉴욕중앙일보 2009년 9월 30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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