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89. 아다지오 속도로

서 량 2009. 9. 15. 14:05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정신분열증을 진단하기 위하여 격언을 들먹일 때가 종종 있다. 양키 의사들은 으레 'People who live in glass houses should not throw stones (유리 집에 사는 사람들은 돌을 던지면 된다)' 무슨 뜻이냐고 환자에게 묻는다.

 

  말은 자기 자신이 결점이 있는 마당에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격언이다. 우리 말에도 '아들 삼형제면 도둑 보고 웃지 말고 삼형제면 화냥년 보고 웃지 말아라' 하는 속담이 있다. 자식이 많다 보면 중에 도둑놈 되는 아들도 있고 화냥년 되는 딸도 있을 터이니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너무 탓하지 말라는 인간적인 충고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위의 말이 '돌을 던지면 유리가 깨진다' 뜻이라고 대답하기가 일수다. 격언이나 속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상적인 사고방식과 두뇌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What's good for the goose is good for the gander'라는 속담이 있다. 거위의 암컷에게 좋으면 수컷에게도 좋다는 . 우리말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해당한다. 이것은 쌍방에게 행복스런 여건을 묘사하는 말이지 결코 거위에 대한 논평이 아니다.

 

 'Every dog has his day' '쥐구멍에도 볕들 있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은유를 즐겨 쓰는 인간의 의사소통에는 이렇게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전래동화와 이솝 우화에는 호랑이, 여우, 토끼, 거북이, , 사자, 늑대, 까마귀 같은 동물들이 판을 친다.

 

 'Walls have ears (벽에도 귀가 있다)' 우리말로 ' 말은 새가 듣고 말은 쥐가 듣는다' 옮긴다. '일석이조' 영어에서도 문자 그대로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이라 한다. 옛날 우리와 양키들 선조들이 하나로 마리를 한꺼번에 잡아 대박이 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 또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쓰기' 해당되는 영어 속담?  'Don't teach your grandmother how to suck eggs' 바로 그것이다. 꼭지에 피도 마른 녀석이 할머니에게 달걀을 먹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다니!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The proof of pudding is in eating' 어떤가. 푸딩 맛은 먹어 보면 안다는 속담에는 '길고 짧은 것은 봐야 안다' 뉘앙스가 숨어 있다. 'Too many cooks spoil the broth' 또한 의미심장하다.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수프를 잡쳐버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 같은 뜻을 우리는 굳이 음식을 개입시키지 않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proverb (격언)' 원래 고대불어와 중세영어와 라틴어에서 '앞으로 (pro)' ' (verbum)' 합쳐진 단어로 '앞으로 내미는 '이라는 뜻이었다. 축약적으로 인생의 지혜가 내장된 말을 쓱쓱 앞으로 남들에게 내미는 동안 금언, 경구, 잠언, 속담이라는 동의어가 파생됐다.

 

 'proverb' 똑같은 뜻인 'adage' 음악용어인 'adagio (아다지오: 천천히, 여유 있게) 뿌리를 함께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16세기 중반에 생긴 라틴어는 처음에 '천천히 ' 한다는 뜻이었는데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면서 격언이라는 뜻으로 변천됐다. 그러니 당신은 면면한 전통을 따라 남에게 속담을 인용하며 훈시를 숨찬 알레그로가 아닌 여유 있는 아다지오 속도로 또박또박 할지어다.

 

© 2009.09.14

--뉴욕중앙일보 2009년 9월 16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