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84. 마이클 잭슨의 가재걸음

서 량 2009. 7. 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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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 년 전에 한국인 코미디언 자니윤이 미국에서 활동할 때 그를 티브이에서 처음 본 기억이 난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In Korea, woman walk behind men. But in America, women walk all over men." -- 한국에서 여자는 남자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여자는 남자를 마구 짓밟으며 걸어갑니다.

 

 'walk all over'는 상대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뜻. 그것은 1970년대 중반 여성 상위운동이 미국을 짓밟던 시대상을 자니윤이 정곡을 찌른, 찌르르한 순간이었다.

 

 'walk'은 고대영어 'wealcan'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굴러가다; 뒹굴다'라는 뜻이었다. 사람이 걸어가거나 낙엽이 바람에 굴러가는 모습을 어떤 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어렴풋하게 느끼는 인간의 감각현상에서 비롯됐으리라.

 

 여성의 생식기를 지칭해서1548년에 생긴 라틴어 'vulva'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엄숙한 한자로는 '음문(陰門)'이라 한다. 문자 그대로 '그늘진  문'이다.

 

 16세기 중엽 경 라틴어에 'volvere'라는 단어가 탄생했는데 'walk'처럼 '굴러가다 (움직이다)'라는 뜻이었다. 'vulva'도 바로 이 말에서 유래했다. 음문은 동적(動的)인 기관이다. 'revolution(혁명)', 'evolution(진화)'도 같은 말의 파생어. 자동차 'Volvo'도 'vulva'처럼 활동적인 이미지를 표출한다. 세상에! 운동과 산도(産道)의 터미널과 혁명과 진화와 스웨덴 자동차가 그 말 뿌리가 같다니!

 

 '걷다'의 명사형인 '걸음'에는 생생한 의미의 우리말이 참으로 많다. 이를테면, 옆으로 가는 게걸음, 뒷걸음질치는 가재걸음, 겅중겅중 뛰는 노루걸음, 뒤뚱거리는 암탉걸음, 얌전한 색시걸음, 다급한 종종걸음, 전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생전 몸의 중심을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걷던 지게걸음, 따위.

 

 또 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움직이는 황새걸음, 느릿느릿한 황소걸음, 다리를 크게 떼면서 점잖게 거동하시는 양반걸음, 발끝을 안쪽으로 모으는 안짱걸음, 발끝을 밖으로 벌려 거드름을 피우는 팔자걸음, 진보도 후퇴도 없는 제자리걸음, 정신 없이 허둥지둥 걷는 허깨비걸음, 기타 등등.

 

 반면에 양키들이 자기들 걸음을 묘사한 복합명사는 몇 개 안되면서 우리말처럼 짭짤한 재미도 없이 싱겁기만 하다.

 

 'jaywalk'는  1909년에 미국에서 문헌상 처음 나타난 걸음인데 '촌놈'이라는 뜻의 'jay'와 'walk'가 합쳐진 말로서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도로를 횡단하는 위험천만한 걸음. 'cakewalk'는 남부 흑인들이 동네 춤 대회에서 춤을 잘 추는 남녀에게 케이크를 상으로 주던 풍습에서 유래한 '쉬운 일(누워서 떡 먹기?)'이라는 뜻. 'catwalk'는 아주 근래에 생겨난 패션계의 슬랭으로 패션모델들이 고양이처럼 한쪽 발을 다른 쪽 발의 앞으로 디뎌서 갈팡질팡(!) 엉덩이 근육동작을 과장한 작태다.

 

 'moonwalk'는 또 어떤가. 마이클 잭슨이 검정색 중절모자를 옆으로 눌러 쓰고 'Billie Jean'을 노래하며 추던 그 춤을 당신도 참 좋아하지 않았던가.

 

 'moonwalk'는 교묘한 발 놀림과 몸 동작으로 뒷걸음질치는 '가재걸음'을 치면서 관객에게는 앞으로 걸어가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춤 동작이다.

 

 어떤가. 진실인즉 영락없는 후진이지만 앞으로 걸어가는 착각에 빠져 열광하는 우리의 정신상태가.


© 서 량 2009.07.05

--뉴욕중앙일보 2009년 7월 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