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미국영어를 깔볼 때 의기양양하게 드는 예로서 'badmouth'가 있다. 이 미국영어는 1930년도 후반기에 쓰이기 시작한 말로서 문자 그대로 남을 헐뜯고 비방한다는 뜻인데 어딘지 모르게 코믹(comic)하게 들린다. 소위 '험담하다'는 우리말의 차가운 의미보다는 '욕하다'는 서민적 뉘앙스가 담긴 희어(戱語)다.
비슷한 뜻으로 표준영어에 'insult (모욕하다)'라는 점잖은 말이 있다. 이 말은 1570년 경에 쓰이기 시작한 라틴어의 'insultare'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덤벼들다; 공격하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누구에게 공격이나 위협을 당했을 때 모욕감을 느끼는 법이다. 근래에 북한이 자꾸 주책스럽게 핵무기를 쏘아대니까 남한과 미국이 음으로 양으로 욕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남을 비방한다는 뜻으로 'malign'이라는 어려운 말도 있다. 13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접두어(接頭語)인 'mal'은 '악(惡)'이라는 뜻이다. 'mal'은 'malady (질병); malignant cancer (악성 암)'에서처럼 아주 고약한 의미로만 쓰인다. 의사들이 엄청난 보험금을 지불하는 malpractice insurance (의료사고 보험)에도 'mal'이 들어간다. 그러니 당신은 내 앞에서 '말(mal)'자로 시작하는 영어단어를 말할 생각을 말지어다.
'욕될 욕(辱)'을 옥편을 찾아보고 1.욕설; 2.꾸지람; 3.부끄러운 일; 4.고생스러운 일로 크게 네 가지로 분류 정리해 보았다.
1번은 '욕하다'에 해당되고, 2번은 '욕먹다', 3번은 수치스럽다는 형용사인 '욕되다'고, 4번은 '욕보다' 할 때 쓰는 용법이다. 예를 들면 1번은 '왜 욕을 해?' 하며 쏘아붙일 때 하는 말이고, 2번은 '직장 상사한테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지' 하는 경우이고, 3번은 '내가 이런 욕된 인생을 어찌 살꼬?' 하며 넋두리할 때 나오는 말이고, 4번은 '수고하셨어요. 저 때문에 크게 욕보셨죠?' 하며 당신이 남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음성의 표현방식이다.
우리의 욕도 대동소이하지만 양키들의 욕설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신(神)을 들먹이는 불경스러움이다. 'God damn it!'이 전형적인 예. 둘째로는 더러움을 연상시키는 'shit'이나 'piss'처럼 인체의 배설물이 욕에 사용된다.
셋째로 사람의 몸, 특히 배꼽 아래 부분에 해당되는 신체의 일부가 욕으로 변한다. 그 중에서도 항문이나 남녀의 생식기의 사용 빈도가 단연 우세하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닭다리를 'chicken leg'라 하지 않고 'drumstick'이라고 하는 이유도 'leg'에서 오는 모종의 연상작용 때문이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에서 오선영의 남편 장교수가 매력적인 여자의 다리를 훔쳐보고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며 낯을 붉히던 장면을 혹시 당신은 기억하는가.
마지막 네 번째는 당신이 속으로만 몰래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절대 내색을 하지 않는 각양각색의 성행위를 지칭하는 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종족보존에 대한 염원은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본능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좌절이나 분노를 느꼈을 때 양키들은 저도 모르게 'f--k' 하며 뇌까리고 우리들은 'x발 (x할)' 하며 욕을 한다.
서로를 꾸짖고 인간의 치부를 들어내고 삶의 고생스러움을 한탄하는 욕설은 별로 권장할만한 언어습관이 아니다. 그러나 전혀 욕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그런 카타르시스가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싱겁고 위선적인 세상인가. 더구나 미국이며 한국이 크게 욕을 보고 있는 작금의 시국에.
© 서 량 2009.06.08
--뉴욕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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