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찰스의 쌍극성 장애

서 량 2009. 5. 7. 04:57

 얼굴이 케빈 코스트너처럼 생긴 50대 중반의 백인 독신남 찰스는 무슨 연고로 몇 년 전까지 칼리포니아에서 근 20년을 살았대. 날씨 화창한 칼리포니아 헐리우드 근처 무슨 조그만 티브이 스테이션에서 카메라맨을 하다가 나중에는 헐리우드로 진출해서 큰 영화회사의 카메라맨이 됐다나 봐.

 

 근데 얘가 쌍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조울증')끼가 있는 거라. 쉽게 말해서 한 동안 몸에 에너지가 철철 넘치고 잠을 안 자도 끄떡 없이 다음날 뛰어다니고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자신의 막강한 능력에 스스로 탄복해서 남을 깔보기가 일수고 그러다가 대인관계도 사나워지는 증후군이 조증(躁症)이야.

 

 울증(鬱症)? 그거야 누구나 쉽게 아는 우울증이지. 사람이 맥이 빠지고 염세적이고 슬퍼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는 증상이지. 엽총으로 자기 입천장을 쏘아 죽은 노벨문학 수상자 어네스트 헤멩웨이도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3일 만에 자살했지. 내가 좋아하는 독일의 낭만파 작곡가 로버트 슈만도 사랑하는 클라라 슈만을 마다하고 라인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했지.

  

 어때? 당신이 듣기에 내 얘기가 좀 지루하지. 당신이 지루하지 않다 해도 나는 스스로 좀 지루해. 하여튼 간에 찰스는 우울증 증세는 별로 없었고 수 년동안을 조증으로 날뛰면서 미친 듯이 일을 했는데 너무나 증상이 심해서 걸핏하면 남하고 쌈박질이나 하고 욱! 하면서 직장도 자꾸 바꾸고 세상 사람이 지 카메라맨 기술의 천재성을 인정 안해 준다고 원망심을 품고 하다가 드디어 "힘들어 못해 먹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 역사에 남긴 말.) 하며 뉴욕 근교의 내과의사 남동생 집에서 작년 여름에 같이 살기 시작했대. 결혼해서 애가 둘인 저보다 두 살 아래 동생집에서.

 

 그쯤해서 촬스가 평생 처음으로 우울증에 빠진거 있지. 내가 뭐랬어. <쌍극성 장애>라 했어, 안 했어. 무심코 들으면 무슨 욕하는 소리 같지만 잘 생각 해 봐. 극과 극이 쌍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쌍극성'이라는 걸 금방 이해 할 수 있지? 뭐라구? 무슨 별(星)이름 같다구? 중국 음식점 이름처럼 들린다구?

 

 하여튼 서너 달 전에 찰스는 정신과의사가 처방한 약 반 달치를 술에 섞어 눈을 부릅뜨고 목에 넘기다가 의사 동생한테 덜컥 들켰대. 이걸 어쩌지. 어떻게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걔는 정신 병동에 한 달인가 입원했다가 결국 무슨 전생의 인연인지 퇴원 후에 내 환자가 된 거야.

 

 찰스는 백수 건달 노릇을 좀 하더니 근처 해변에 보트장에서 보트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자리를 얻어서 요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 그놈 표정은 똥 씹은 얼굴이야.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데 요새 날 보면 계속 지가 칼리포니아에서 얼마나 인생을 낭비했느냐에 대한 푸념을 들입다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듣다 듣다 못해 그래, 너는 인생을 좀 낭비를 한 것 같은데 그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것도 사실은 이 금싸라기 같은 니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다, 알겠냐? 이눔아! 했더니 글쎄 이 눔이 씨익 웃으면서 그 말이 맞다는 거야. 말이나 못하면 떡이나 주지!

 

 그러면서 찰스는 자기가 그렇게 독하게 후휘를 하는 이유는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다짐을 하는 거니까 날 보고 너무 걱정하거나 상심하지 말라는 거라. 내가 그래서 뭐랬게? 너는 참 사람이 좋은 의미로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데 그 증거로서 과거 칼리포니아 시절과는 달리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해 주는 것이 참 인간적으로 들린다! 했지. 그랬더니 이놈이 환하게 웃으면서 참 좋아하더라구. 그놈, 허우대는 멀쩡하게 코가 주먹만한 케빈 코스트너처럼 생겨가지구.   

 

© 서 량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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