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구웬의 변모

서 량 2009. 3. 13. 09:14

 30대 후반의 갈색머리 구웬은 술과 마약 문제 때문에 롤랜드에게 정신상담을 한참 받아온 백인 여자. 나는 정신치료사 롤랜드를 수퍼바이즈 해 주는 입장. 그러다가 구웬은 불면증세가 있다고 해서 몇 번 내가 처방을 내려준 적이 있어. 영화 'Fatal attraction'(위험한 정사: 1987)에 나온 여주인공 글렌 클로즈(Glenn Close)처럼 생겼기 때문에 어느새 롤랜드와 나 사이에 글렌 클로즈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여자인데 늘 앞가슴이 심하게 깊이 패인 웃옷을 입고 다녀. 말을 할 때는 고개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심하게 흔드는 버릇이 있다구.

 

 근 6개월을 롤랜드에게 정신상담을 받던 중 요 몇 달 전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이 여자가 소위 경찰의 끄나풀이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구웬은 직업이 창녀인데 마약딜러들을 많이 상대한대. 물론 저도 코케인을 하는 거야. 그래서 큼직한 마약거래 상황을 알아 내서 경찰에게 알려주는 댓가로 경찰이 구웬을 봐주는 거지. 그 짓을 벌써 몇 년을 해 왔는데 구웬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자꾸 회의심이 생기고 해서 경찰들에게 이제 밀고자 역활을 고만하겠다고 한 거지. 그랬더니 경찰에서 그러라고 너그로이 그 뜻을 받아들였대. 그래서 구웬은 창녀고 마약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야말로 재생의 길을 걸으면서 인근 수퍼마켓에서 캐쉬어로 일하는 모범 시민이 된 거지.

 

 어제 병원 복도에서 금발에다가 80년도에 유행했던 얼굴을 반쯤 덮는 큼지막한 그것도 금테 안경을 쓰고 옷도 이상하게 촌스럽게 입은 여자가 나를 부르더니 글쎄 자기에게 어포인트멘트를 줬으면 하는 거야. 어디서 본 얼굴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얼굴 같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그건 나하고 직접 하는게 아니라 비서하고 하라고 했지. 그랬더니 자기가 금방 롤랜드하고 세션을 마치고 나오는 참이래. 아, 그러면 롤랜드에게 부탁하면 롤랜드가 스케쥴을 잡아 줄 거라고 말하면서 돌아섰는데 도무지 환자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거 있지. 나 참 난처하대.

 

 곧바로 롤랜드에게 가서 야, 너가 금방 본 금발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지? 했더니 하나님 맙소사, 그게 바로 구웬이라는 거야. 갈색머리를 금발로 염색을 했다나. 세상에, 세상에 걔가 가슴이 깊이 파인 웃옷을 입고 가슴을 파도처럼 출렁이며 말하던 바로 그 구웬이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그 날렵하고 톡 쏘는 얼굴과 몸매는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펑퍼짐한 촌여자가 된거야? 했지. 그랬더니 롤랜드 왈, 재생의 길을 걷는 여자는 다 그렇게 변한다는 거라나 어떻다나.

 

 그래서 농담 비슷하게 내가 롤랜드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 재생의 길도 좋지만 이거 원, 너는 구웬을 옛날의 글렌 클로즈로 다시 바꿔 놓아라! 한 거지. 히히. 당신 내 말을 이상하게 받아드리지 말아요.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어. 백 프로.

 

© 서 량 200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