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제이가 자꾸 누가 날 독살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의하라고 하길래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눔아. 네가 한 말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너는 미친 놈이 아니다. 반면에 네가 한 말이 진실이 아닌데 그렇게 부득부득 우긴다면 너는 완전 미친 놈이다. 물론 이런 심한 말은 처음 보는 환자에는 절대로 못할 말이지. 그 놈을 수 년간 알고 지내고 서로 친한 사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구.
당신 귀에는 어떻게 들려? 내 말이 좀 알쏭달쏭한가? 그리고 내가 묻기를 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했더니 글쎄 이 놈이 자기가 한 말은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저는 절대로 미친 놈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내가 다시 말하기를, 야, 이놈아 너는 내가 사람이 미쳤나 안 미쳤나를 가려내는 전문가라는 거는 인정하냐? 했더니 그건 인정한다는 거라.
그래서 이랬지. 그래 좋아. 나는 요새 네가 진짜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에는 이제 관심이 없다, 알겠냐? 그건 내 알 바도 아니고 니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 대신에 내가 니 정신과의사로서 한 가지만 부탁할테니까 우리의 오랜 우정을 생각해서 들어 주겠니? 했더니 그러겠대. 진짜지? 했더니, 진짜래.
그러면 이렇게 해라. 니가 내 신변의 위험을 걱정해 주는 것이 나는 참 고맙고 가끔 경고를 하는 건 괜찮은데 너 절대로 남들에게는 그 말을 하지 말아라. 그랬더니 그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답하기를 나 자신은 아무래도 좋지만 남들이 너를 미쳤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참 싫기 때문이라 했지. 그리고 또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속으로 미쳤다 해도 겉으로 미친 소리만 안 하면 그게 바로 정상인 거다! 했다. 그랬더니 그 말 참 백 번 맞는 말이라면서 아주 고맙다며 나하고 굳은 약속을 했다. 새삼스레 악수까지 하면서 둘 다 껄껄 웃었지. 그것도 한참을.
그놈이 내 사무실을 나간 다음에 근데 나 솔직히 정신이 좀 얼떨떨하더라구. 내가 한 말이 맞는다는 생각마저 살살 드는 거 있지. 킥킥.
© 서 량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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