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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미래파> 논란

서 량 2009. 3. 21. 06:40

 오늘은 좀 본격적으로 시(詩) 얘기를 해 볼까 하는데. 한 번 읽어서 귀에 쏙 들어오는 시를 밝히는 당신이 듣기에 울렁증이 오는 얘기를 해 볼까 하는데. 흐흐흐. 무슨 연고로 오늘 <미래파>에 대한 시론 혹은 담론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이기지 못했거든.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나는 누가 어디 출신이고 하는 이조시대 사색당파 같은 사고방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그래서 나는 권혁웅이가 어디 출신인지 (물론 한국사람이겠지, 킥킥)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 사람이 갑자기 2005년에 몇몇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라고 명명했다는 거야. 근데 왜 하필이며 '젊은 시인'들을 들먹였는지. 나이 먹은 시인들이 섭섭하게시리. 히히. 하여튼 그는 몇몇 새파란 애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걔네들이 쓰는 시가 우리 한국시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것이라는 식으로 운을 띄웠던 거야. 그러니까 이게 자기가 점쟁이라는 얘기인지 뭔지.

 

 1909년 2월에 이탤리의 'F. T. Marinetti'가 이미 Futurism(미래파)에 대한 선고를 내린 걸 당신은 혹시 아는지 몰라. 재미 삼아서 -- 좀 거칠기는 하지만 -- 그때 그의 귀재적인 발언을 한 번 들어 봐. 물론 이건 예술 전반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하지만 詩에도 왕창 적용되는 말이야.

 

 --Up to now, literature has exalted a pensive immobility, ecstasy, and sleep. We intend to exalt aggressive action, a feverish insomnia, the racer's stride, the mortal leap, the punch and the slap. We affirm that the world's magnificence has been enriched by a new beauty: the beauty of speed. We will destroy the museums, libraries, academies of every kind, will fight moralism, feminism, every opportunistic or utilitarian cowardice. --지금껏, 문학은 시름에 잠긴 부동자세와 희열과 수면을 숭상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공격적인 행동과, 열띈 불면과, 뜀박질하는 사람의 보폭과, 인간적인 비약과, 타격과 비난을 숭상할 의도가 있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 이를테면 그 속도감의 아름다움으로 세계가 화려해질 것임을 단언한다. 우리는 박물관과, 도서관과, 모든 종류의 학계를 파괴할 것이며, 도덕성과 여성우월주의 그리고 온갖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비겁함과 싸울 것이다.

 

 그 당시만해도 피카소가 끼친 입체주의가 예술을 잡고 흔들 때였지. 입체주의가 미래주의 앞에서 아이구, 형님! 하며 무릎을 탁 꿇었다는 거야. 근 100년쯤 전에 마리네티는 이런 추상적인 생각과 발언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권혁웅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맥 위주의 애매몽롱하고 권위 위주의 발언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권혁웅의 실책은 모든 우리들이 그렇듯이 추상보다 인맥에 관심을 쏟은 데 있었다. 근데 그후에 권혁웅은 미래파에 대한 스스로의 발언을 우물쭈물, 그러나 단호하게 번복을 내렸대나 봐.

 

 <문예중앙> 2007년 봄호 특집에서 그는 <미래파, 그 이후>를 통해서 <미래파2>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7년, 젊은 시인들을 위한 변론'이라 소제목을 붙인 글로 "미래파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미래파' 논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는 거야. (출처: 미래파 논쟁은 한번도 없었다 - 오마이뉴스) 바로 이런 걸 두고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하는 거다. 암, 오리발이지. 절대로 닭발이 아니야. 그는 또 이렇게 공언했대. --"미래파라는 이름이 외연을 갖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서 그 이름으로 지칭되는 여러 시인들을 거느리게 되었을 때, 사정은 딴판으로 흘러갔다. '미래파'란 말이 소통 불가능하고 유희적이고 자폐적인 언어를 쓰는 '철없는' 시인들, 장광설과 환상과 엽기로 특징짓는 '진지하지 않은' 일군의 시인들을 이르는 용어로 변질되어 간 것이다." 라고.

 

 이거 참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발언이지? 이게 바로 백 년 전에 이태리의 마리네티가 예견한 인류의 문화와 예술이 점진적으로 변모해가는 양상, 그 착잡한 과정에서 발발하는 온갖 기회주의적이며 실용적인 비겁함의 소치가 아니겠어?


© 서 량 2009.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