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이 울렁증이 좀 오더라도 나 영어를 하고 싶은데.
내 잘난 영어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절대로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윈스턴 처칠이 오래 전에 한 영어를 낭낭하게 반복하겠다는 거야. 히히.
어떻게 책(글)을 쓰는가에 대한 유명한 인용구야. 인용구치고는 좀 길기는 하지만.
-- Writing a book is an adventure. To begin with, it is a toy and an amusement;
then it becomes a mistress, and then it becomes a master, and then a tyrant.
The last phase is that just as you are about to be reconciled to your servitude,
you kill the monster, and fling him out to the public. --
-- 책을 쓴다는 것은 모험이다. 처음에 그것은 장난감이며 희롱이다;
그후에 그건 정부(情婦)가 되고, 주인이 되고, 급기야는 폭군이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당신이 그 노예상태와 화해가 이루어질 때쯤 당신은
그 괴물같은 폭군을 죽여서 대중에게 내동댕이를 치는 것이다. --
어때? 이거 참 감명 깊은 얘기 아니야? 이 명언을 나는 시(詩)를 쓰는데 적용시키고
있어요. 요새같이 인터넷에 시가 범람하는 세상에, 자다가 일어나서 한 5분 안으로 짧막한
개똥철학이나, 낮에 느꼈던 생각이나 일상의 경험을 초등학교 애들이 일기 쓰듯이 써 놓은 글들이
시(詩)의 형태를 빌려서 마구마구 업로드되는 세상에 이거 한참 새겨들어 볼만한 얘기라구. 큭큭.
처칠의 명언을 욧점만 간추려 보면 우리가 쓰는 글이나 시의 모습이 다음과 같은 탈바꿈을 거친다.
(1) 장난 (2) 정부(情婦) (3) 주인 (4) 작가를 노예처럼 못살게 구는 폭군 (5) 작가가 죽여버린 폭군
에헴, 내가 볼 때는 대개 글이나 시가 1번 아니면 2번에서 그치고 말아. 3번 부터는 점점
힘이 들기 시작하고 특히 4번을 극복하고 5번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정말 고통의 절정이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맞붙는 투쟁이야.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어.
나는 어떻게어떻게 5번을 넘기면 스스로 육감적으로 '이젠 됐다' 하는 느낌이 들어.
운 좋게도 5번을 넘기면 좀 미치광스러워진다. 솔직히 그 다음에는 앉은 자리에서 두 번 다시
그 글이나 시는 꼴보기 싫어져. 하도 고생을 했기 때문에 역겹고 진절머리가 나는 거 있지.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걸 윈스턴 처칠 말대로 대중에게 내팽겨치는 거야.
하나만 더! 나는 처칠 같은 엄청난 재능이 없기 때문에 대개는 다음 날 아침 쯤 해서 다시
한 번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가재미 눈으로 내 글을 읽어 봐요. 그러면서 한두 군데를 고치는데
어떤 때는 그 마지막에 몰래 수정한 한두 부분 때문에 시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니까. 킥킥.
내 보기에 당신도 은근히 시를 써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이거 좀 겁나는 얘기지?
괜찮아. 윈스턴 처칠의 첫 마디처럼 글을 쓴다는 것, 말이나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야.
예술도 인생도, 모든 생명의 표현방식은 모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살맛이 나는게 아닐까?
© 서 량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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