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수다, 담론, 게시

|잡담| 칵테일 파티

서 량 2009. 2. 14. 05:53

당신도 알다시피 나 잘난 척하는 걸 참 싫어하는 편이지. 근데 오늘은
좀 잘난 척하고 싶은 심정이네. 그것도 혹시 당신이 울렁증이 있을 것 같은
영어, 게다가 영시를 가지고 위험천만한 과시를 하고 싶은 거야. 이해해 줄 수 있슬런지.

 

티 에스 엘리엇(T. S. Eliot)의 극시<칵테일 파티>(The Cocktail Party)를
옛날에 띄엄띄엄 읽은 적이 있어. 물론 그 얘기 줄거리도
잘 모르면서. 히히. 힘들고 어려운 부분은 띠어먹으면서 대따로
열나게 읽었지. 그러다가 다음 대목에서 찌르르한 전율감이 오더라구.
마침 또 나중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봤더니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정신과의사가 하는
말이었다구. 도둑이 도둑을 알아본다더니. 어쩐지 사람의 성격이라든가
자의식(自意識) 같은 것에 대한 문젯점이 내 귀에 쏙 들어오더라니까.

 

" -- There's a loss of personality
Or rather, you lost touch with the person
You thought you were. You no longer feel quite human.
You're suddenly reduced to the status of an object ---
A living object, but no longer a person.
It's always happening, because one is an object
As well as a person. But we forget about it
As quickly as we can. When you've dressed for a party
And are going downstairs, with everything about you
Arranged to support you in the role you have chosen.
Then sometimes, when you come to the bottom step
There is one step more than your feet expected
And you come down with a jolt. Just for a moment
You have the experience of being an object
At the mercy of a malevolent staircase."
-- from T. S. Eliot [The Cocktail Party] (pp.29~30)  "

 

-- 성격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아니면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인격을 상실하는 거죠. 자신이 더 이상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에요.
불현듯 당신은 하나의 물체로 축소된 상태입니다 ---
하나의 생동하는 물체, 그러나 그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체이면서
또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우리는 그걸
아주 깜빡 잊어버리는 겁니다. 당신이 파티복을 입고
층계를 내려 올때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이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가지런히 선호하고 있지요
그러다 간혹, 당신이 맨 밑바닥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
발길이 예상한 것보다 계단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덜커덕 밑쪽으로 쏠립니다. 한 순간에
당신은 마음씨 고약한 계단 하나의 위력에 의하여
하나의 물체가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 티 에스 엘리엇 <칵테일 파티>에서 (29-30쪽)

 

그래. 나나 당신이나 삶의 어느 순간에 그게 1,2초 동안 휘청! 하는
동작이건 또는 5분, 10분, 때로는 한두 시간, 한두 달 사이에 사람이 진정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물체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지 않아?
그런 상태에서는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성격이나 개성이나
인격 따위가 깡그리 사라지고 마는 법. 당신이나 나나 더 이상
지성인을 자처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순간이라고나 할까.

 

우리 몸과 마음은 늘 그렇게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부정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라는 물체를 감별하고 판단하는 내 인격은
과연 어떤 성능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지 오늘.

 

당신이 듣기에 어때? 너무 심각해? 시시해? 별로야?

 

 

© 서 량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