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제이 입원하다

서 량 2009. 3. 7. 09:50

 올 64살의 백인남자 제이가 한 달에 한 번씩 날 찾아온 게 벌써 4년이 넘었네. 내가 오죽하면 하도 신경이 쓰여지는 환자라서 그놈을 주제로한 시까지 썼을라구. 당신도 이제는 날 어느 정도 파악했겠지만 나 말이지 환자들 중에 각별히 정이 가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차가워지거나 심지어는 싫은 데 억지로 보는 환자도 있어. 크게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구. 단지 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현상일 거야. 큭큭.

 

 세 살 터울 금발의 여동생 그레이스는 흑인하고 결혼해서 영세민 혜택을 받고 그럭저럭 살았는데 2년 전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덜커덕 죽었지 뭐야. 그레이스는 평소부터 콩팥(腎)이 부실해서 신부전증으로 고생을 해 오던 터인데 남편 없이 혼자 사느니 투 베드룸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결국 오빠하고 같이 살기로 했지.

 

 부랑자 수용소에 살면서 제이가 얼마나 이빨을 득득 갈았는지 알아? 그러니 할아버지가 저명한 신경외과의사인 피를 이어 받은 우리의 제이가 얼마나 기뻣겠어, 응? 그렇게도 불편해 하던 '저질인간'(모욕적인 영어로 'low life'라 해요)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여동생 아파트로 입주를 했지. 그게 벌써 2년 전 얘기야.

 

 내가 세월이 어떻게 흐른다 했어. 유수와 같이 흐른다 했어~ 안 했어? 여하튼 2년이 후딱 지나간 지금 그레이스의 건강이 대따로 악화된 거야. 인공신장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몸 속의 뇨독(尿毒)을 씻어내다가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한 후 그레이스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거야. 내 말 오해하지 마. 이건 미쳤다는 얘기가 아니고 뇌에 신진대사가 잘 안되서 뇌 기능이 마비된 거야. 그레이스는 앞으로 한두 달을 넘기기가 힘이 들거래. 어쩌지. 남매는 단 둘인데.

 

 그쯤해서 제이는 실성하기 시작했어. 갑자기 내게 하는 말이 부랑자 수용소 원장이 자기가 그곳을 떠난 것에 대해 앙심을 품었다는 거야. 왜냐하면 제이가 그곳을 떠난 이후로 수용소 운영이 적자가 나서 요새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래. 그래서 원장은 제이가 그곳을 떠나게끔 문서에 싸인을 해준 나를 독살을 할 계획을 세웠다나 어쨌다나. 제이의 괴상한 추측에 의하면 부랑자 수용소의 사업을 내가 망하게 했다는 이론이었어. 그러면서 날더러 독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바삐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아, 글쎄 이 녀석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사무실 벽을 발로 치고 그야말로 지랄난동을 치는 거야.

 

 어떻게 해. 곧바로 빌딩의 씨큐리티를 불러서 제이를 거진 결박하다시피 해서 정신과병동에 입원을 시켰지. 나 참 기가 막혀서. 제이 놈! 미쳐도 이만저만 미쳐야지. 왜 나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이거야, 앙?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 눈에도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부랑자 수용소 원장에게 독살 당할 놈으로 보여~ 안 보여? 흐흐흐.

 

© 서 량 200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