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5. 돈이 뭐길래

서 량 2009. 3. 2. 12:31

 'money'는 1290년 경 처음 쓰이기 시작한 영어인데 로마 신의 제왕인 주피터(Jupiter)의 아내 주노(Juno)의 신전을 'Moneta'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

 

 'Moneta'는 당시에 '돈을 만드는 곳'으로서 소위 현대의 조폐소(造幣所)에 해당되는 장소였다. 산지사방 조무래기 신들을 통치하는 총대빵의 와이프가 돈을 지배했다는 신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권력을 내조하는 것은 바로 돈의 힘이었고 그 실권을 여자가 쥐었다는 사실이.

 

 당신은 요사이 한국에서 여자들끼리 모여 소주를 마시며 떠들썩하게 건배를 할 때 우스개 소리로 '남존여비!'라 외치는 것을 아는가. 그 뜻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아니라 '자라는 재는 자의 용을 댄다'인 것도?

 

 'money'는 또 고대 불어로 'moneie'라 했는데 같은 말 뿌리의 'monere'는 16세기 초엽에 라틴어로 '훈시하다'라는 뜻이었다. 'monere'에서 현대어의 'monitor'라는 단어가 파생됐는데 이 단어를 냉소적으로 해석하면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장면조차 떠오른다. 동서양의 다소곳하고 성실한 아내들이 가계부를 조석으로 정리하며 남편들에게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바가지를 박박 긁는 장면이 연상되리라.

 

 우리말의 '돈'은 어떤가. 돈의 어원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돌고 '돈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설도 있고 엽전의 단위인 '전(錢)'의 발음이 '돈'으로 변했다는 소문도 있다. 게다가 초기 화폐의 생김새가 칼(刀: 도)처럼 생겼다는 데서 '도'가 '돈'으로 와전됐다는 학설 또한 대단하다. 지폐가 생겨난 19세기 이전에는 동서양의 모든 화폐가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역사의 정설이다. 'coin(동전)'은 원래 '쐐기' 혹은 '뾰족한 돌'이라는 뜻. 늘 반대노선을 달리는 동서양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일치한다는 점이 놀랍고 신기하다.

 

 관용어로 'Put your money where your mouth is'라는 말이 있다. '당신의 입이 있는 곳에 돈을 넣어라' 하면 실로 난감한 직역이지만 '말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꼭 돈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듣는 이의 귀가 솔깃해지는 것일까.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의미로 'Money talks'라 하는 격언 또한 강력한 구강성(口腔性)으로 양키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1792년에 유럽의 화폐 단위에 맞서서 미국의 공식화폐 단위로 채용된 'dollar'는16세기 초 현재 체코의 동남부 한 산골짝에 은광이 발견되면서 골짜기라는 뜻의 'das Tal'에서 유래했다. 아직 현대영어에서도 'dale'은 계곡이라는 뜻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화폐단위가 근래에는 한글로 그냥 '원'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한자로 '둥글 원(圓)'으로 표기했다. 양키들의 달러는 '계곡'에서 태어났고 우리의 원화는 '둥글다'는 뜻이 정신분석학적으로 재미가 난다. 인류 역사상 돈을 지배해 온 것은 정녕코 여성이었을까. 현찰이라는 의미의 'cash'도 중세 불어의 'caisse', 즉 현대어의 'case(상자)'에서 왔으니 이 또한 어떤 물건을 담아둔다는 각도가 참으로 여성적인 뉘앙스가 아닌가.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00명의 가난배기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 했던 아담 스미스의 명언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유경쟁에 뿌리를 박고 있다. 전세계가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작금의 추세에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한층 더 뜨거워진 햇살을 등에 업은 채 아프리카 대륙을 달리는 들소들처럼 우리는 지금 어디론지 냅다 치닫고 있는 것이다.


© 서 량 2009.03.01

--뉴욕중앙일보 2009년 3월 4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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