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9. 잃어버린 마음과 빼앗긴 마음

서 량 2009. 4. 27. 14:21

 'lose heart'는 낙심(落心)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분실 당했다는 의미다. 마음 주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마음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 행동을 'take heart' 즉 '용기를 낸다'  한다. 두 관용어가 다 'my' 또는 'your' 같은 소유격이 들어가지 않는 점에 당신은 유의하기 바란다. 즉, 'Don't lose your heart' 또는 'Take your heart' 하면 도무지 뜻이 안 통하는 반면 'Don't lose heart. (낙심하지마)' 하거나  'Take heart and try again. (용기를 내서 다시 해 봐)' 하면 아주 세련된 영어다.

 

 고대 라틴어로는 'heart'를 'cor'라 했다. 결혼식 초대장에 으레 찍히는 말로 'You are cordially invited to the wedding ceremony of...' 할 때 'cordially'는 'cor'에서 유래한 말로서 '진심(眞心)으로'라는 의미다. 'cordial relationship'은 정중한 사이로서 적개심이나 연정 따위가 개입이 안 된 공식적이고 따뜻한 대인관계를 지칭한다.  그리고 'core'는 '핵심'이라는 뜻. 심장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핵심이라는 점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현대 독일어처럼 옛날 유럽계 언어에서는 H(ㅎ) 와 K(ㅋ)를 어중간 하게 거의 같은 소리로 발음했다. 음악의 거성, 평균율의 대가 'Bach'를 독일어로 "바하”라 하지만 영어로는 "바크”라 하지 않는가. 독일어와 유태어에는 거친 'H'의 가래 끓는 소리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고대영어에서는 현대어의 하트(heart)를 커드(kerd)라 했다. 'kerd' 에서 나온 현대영어로는 'cord(줄; 끈)'과 'chord(심금: 心琴)'이 있다. 음악용어로 'chord'는 화음(和音) 을 뜻한다. 'cor'와 'kerd'가 뒤범벅이 된 단어로 'cardiac'은  '심장병의'라는 형용사가 되고 'cardiologist'는 심장내과전문의라는 버젓한 현대단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마음이 심장에 소재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심장 이퀄 마음 (심장=마음)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마음은 혈액순환을 주관하고, 마음은 끈이요, 음악의 화음일 뿐더러, 마음이 상하면 심장병이 생기는 법.

 

 처음에 들먹였던 'lose heart'로 돌아가 보자. 'heart'에 소유격을 일부러 집어 넣고 전치사도 가미하면 재미난 일이 일어난다.  'lose one’s heart to somebody'는 마음을 누구에게 빼앗겼다는 뜻으로 사랑에 빠진다는 뜻이다. 'She lost her heart to him. (그녀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어.)' 이쯤 되면 마음 이퀄 사랑 (심장=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변심했을 때는 'He broke her heart, (마음을 망가트렸어)'라 한다. 우리 속어로 번역하면 '그 놈은 그 여자를 울렸어'다.

 

 남녀가 절교한다는 슬랭으로 'dump'가 있다. 'He dumped her'는 남자가 여자를 찼다는 뜻. 양키들은 상대를 덤프 트럭이 쓰레기 버리듯 '덤프'해 버리지만 우리는 야생마처럼 발길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떠나려는 남자의 바지가랑이를 여자가 잡고 늘어지면 사람이 걸음을 걸을 수 없으니까 할 수없이 발로 가여운 여자를 들입다 차버리는 눈물겨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에서도 사쁜히 즈려 밟히는 김소월의 '진달래'에서도 우리는 왜 연인의 발이 그다지도 사단이 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서 량 2009.04.27

--뉴욕중앙일보 2009년 4월 29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