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6. 꽃샘추위

서 량 2009. 3. 15. 22:22

꽃샘추위는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우리만의 독특한 어휘다. 봄이 다가오면서 꽃들이 저마다 울긋불긋 고개를 처들 때 그 아름다움을 시샘해서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며 기온을 떨어뜨려 사람들을 추위에 덜덜 떨게 하는 기후현상을 우리는 꽃샘추위라 부른다.

 

'시새움'의 약자인 '시샘'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우월성을 미워하고 싫어함을 뜻하는데 한자로는 시기(猜忌)라 한다. 당신은 단테의 신곡(神曲) '연옥'편에서 살아 생전 시샘이 많았던 영혼들이 벌을 받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 샘꾸러기 영혼들은 눈까풀이 철사로 굳게 꿰매져서 아예 처음부터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형벌에 시달린다. 그들은 죽어 앞 못 보는 장님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7대 죄악에 '시기'가 들어가고 유교의 칠거지악에는 '질투'가 들어간다. 시기와 질투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설정에는 나와 사촌, 딱 두 사람 만이 등장하는 사실에 유의하시라. 두 인간 사이에 한쪽이 다른 쪽의 우월성을 눈뜨고 못 본 결과로 독약 같은 시샘이 흥건히 고인 위장이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바로 어제 산 새 차를 마켓 주차장에 세워 놓았더니 누가 열쇠로 북 긁어서 골 깊은 흠집을 내어 놓는 것도 마찬가지 메커니즘이다. 'envy: 시기'는 1280년 경 고대 불어의 'envie'와 라틴어의 'invidia'에서 'look at with malice (악의를 가지고 바라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백안시한다는 의미다. 역설적이지만 현대영어의 'envision(상상하다; 계획하다)'이라는 단어도 'envy'와 말 뿌리가 같다.

 

'질투(嫉妬)'는 또 어떤가. 우선 두 글자에 똑 같이 '계집 녀'가 들어가는 것이 당신의 눈길을 끌 것이다. '미워할 질'에 '샘낼 투'로 옥편은 풀이한다. 처음 글자는 '여자의 병'으로, 나중 글자는 '여자가 돌을 던지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질투는 여자만 한다는 말인가? 남존여비 사상으로 도배를 한 중국인들이여!

 

당신이 즐겨 보는 한국 티브이 드라마에서처럼 질투는 항상 삼각관계를 전제로 한다. 한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두 여자가 경쟁을 하거나 한 여자를 쟁취하기 위하여 두 남자가 싸움을 벌리는 상황이 바로 질투다. 세기적인 천재 프로이트가 내세운 이디푸스(Oedipus) 컴플렉스도 어머니라는 이성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이라는 점을 당신은 상기할지어다.

 

나와 너라는 일인칭과 이인칭이 서로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마음 씀씀이보다 3인칭의 존재를 염두에 둔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신상태가 훨씬 더 세련돼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jealous (질투하는)'는 본디 라틴어와 희랍어에서 이미 1225년 경에 '흉내 내다; 경쟁하다; 노력하다'라는 뜻이었다. 'zeal(열성)'도 같은 어원에서 생긴 말이다. 질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점에서 시기보다 훨씬 원숙하고 세련된 인간심리다. 아버지를 능가하려는 아들의 경쟁심리에서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우월성을 증오한 나머지 미국을 파괴하려는 행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철딱서니 없는 시샘의 발로다.

 

요사이 동장군님께서 꽃에 향한 시샘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계시다. 혹시 동장군은 단테의 연옥에 가서 꽃을 시샘한 벌로서 눈까풀이 바늘로 꿰매지는 것은 아닐지. 그것은 시기와 질투로 뒤범벅이 되어 젊고 싱싱한 며느리를 아침 저녁으로 구박하는 저 서슬이 시퍼런 한국 티브이 연속 드라마의 시어머니들이 받아야 할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 서 량 2009.03.14

--뉴욕중앙일보 2009년 3월 1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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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꽃샘추위

꽃샘추위는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우리만의 독특한 어휘다. 봄이 다가오면서 꽃들이 저마다 울긋불긋 고개를 처들 때 그 아름다움을 시샘해서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며 기온을 떨어뜨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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