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정신 안정과 마굿간

서 량 2008. 12. 30. 10:16

 

극심한 슬픔과 기쁨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증상을 조울증이라 해. 당신도 아마 그런 말을 들어 봤을 거야. 대개 예술적인 기질이 많은 사람들은 약간의 그런 증세를 보이는 게 상례야. <바다와 노인>을 쓴 노벨문학 수상자 어니스트 헤멩웨이가 지독한 조울증의 결과로 엽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겨서 자살했지, 왜.

 

내 환자 중에 허우대가 멀쩡한 백인 재즈 피아니스는 고등학교 중퇴하고 집에서 놀면서 혼자 재즈 피아노를 익혀서 지금은 자기 악단을 갖고 밤마다 술집에서 연주하며 지내는데 심한 조울증 증세가 있어요. 30살 좀 넘었는데 벌써 두 번인가 병원에 입원을 했었어. 좋은 약을 먹고 요새는 몇 년을 정상으로 지내면서 한 달에 한 번 나를 찾아 온다구. 정신적으로 아주 안정된 상태야. 근데 오늘 밑도 끝도 없이 "I think I am stabe as the house of horses." 하길래 잠깐 어리둥절했지. "나는 내가 말들이 사는 집(마굿간?)처럼 안정됐다고 생각해요." ?? 이게 무슨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그치?

 

잘 생각해 봤더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이놈이 지딴에는 썰렁한 유모어를 한 거라. 정신이 안정스럽다는 형용사가 'stable'이라 하고 마굿간이라는 명사도 'stable'이잖아. 그래서 자기가 아주 정신이 안정됐다는 말을 동어이의(同語異意: 같은 말로서 다른 뜻)를 써서 자기 딴에는 재치있는 말을 한 거라. 아이구 재미도 있어라. 그래서 나도 일부러 과장해서 크게 웃었지.

 

그 순간에 근 30년 전 일이 생각나는 거 있지. 1979년이었을 거야. 한 어려운 조울증 환자가 점점 미쳐 날뛰는 '조'증이 점점 심해가길에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겠더라구. 입원하라고 했더니 글쎄 싫다는 거야. 자기가 볼 때 저는 멀쩡한데 왜 입원을 하라냐며 거칠게 대들면서 입원 이유를 대라는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나 아주 고지식하고 직설적이잖아. 그래서 "Because your mood needs to be more stable." (기분의 안정이 필요합니다)라고 그 경을 칠 놈의 'stable'이라는 단어를 쓴 거야. 그랬더니 이 여자가 "I am not a horse !!" (나는 말이 아니에요) 하면서 저를 동물 취급을 했다며 나를 때릴려고 덤벼드는 거야. 나 참 기가 막혀서. 어떡했냐구? 물론 잽싸게 그녀를 뿌리치고 냅다 도망을 쳤지. 킥킥.

 

어때. 내 얘기 재미있지? 혹시 당신이 내 썰렁한 유모어를 못 알아 들었어도 괜찮아. 가끔 그때를 생가하면 웃음이 나와. 근데 오늘 또 오랜만에 그때 생각이 또 난 거야. 'stable'에는 왜 마굿간이라는 뜻이 있어서 사람을 골치 아프고 썰렁하게 만드는지.

 

© 서 량 200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