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흑인이고 어머니가 인도여자인 21살 짜리 데이오나는 지금 임신 8주. 23세의 남친 리로이가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 당해 8개월 감옥 살이를 하고 나온 바로 그날 임신이 덜커덕 된 거야 그러니까.
데이오나는 하필이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날 밤 리로이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한 멋진 남자와 5번을 같이 잤다는고백을 했다나 어쨌다나. 상대방 심정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솔직하게 실토를 했다는 거라. 리로이가 그 말을 듣고 티브이를 때려 부수고 부엌 쓰레기통을 뒤집어 엎고 난동을 부렸다는 거 있지.
그로부터 며칠 후에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데이오나와 리로이가 한 이불 속에서 자는데 데이오나가 잠이 안 와서 엎치락뒤차락하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무지개 같은 알록달록한 물체가 꾹 감은 눈 속에서 펄쩍펄쩍 춤을 추고 그랬다는 거야. 어때. 당신이 듣기에 좀 긴장감이 와?
게다가 몇 개월 전에 맨해튼의 한 점쟁이를 찾아 갔었는데 그때 그 점쟁이 왈, 누가 데이오나를 저주하는 주문을 외고 있다고 하더래. 근데 이 점쟁이는 점쟁이 실력이 딸려서 저주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고 했다더군. 하여튼 데이오나는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는 그 순간에 불현듯 그 점쟁이 생각이 난 거야. 그래서 아, 이게 바로 그 점쟁이가 말한 저주가 내게 오는 징조로구나! 하고 가슴 깊히 느낀 연후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다가 리로이가 경찰을 불러 결국 정신과 응급실로 간 거야. 그후 리로이는 종적을 감춰 버렸대.
그리고 데이오나는 정신과 병동에서 열흘을 지낸 후 퇴원하고 내게 왔지. 그것도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고 봐야 할 거야, 킥킥. 한 시간 정도 서로 얘기를 나누고 나서 내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하기를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하고 게다가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적게 태어나면 그런 증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몸 관리나 잘해서 첫 애를 무난하게 날 생각을 하라고 했어. 그랬더니 데이오나가 초롱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 이렇게 묻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일시적인 증상을 앞으로라도 방지할 수 있냐고.
아, 그거야 스트레스가 극심하지 않는 인생을 살거나 아니면 애시당초 태어날 적에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능력을 크게 갖고 태어났으면 되는 거라고 했지. 게다가 부모가 현명하고 정신적으로 튼튼하면 금상첨화라 했다. 그랬더니 글쎄 자기 애비가 소문난 마약딜러라는 거야. 근데 마약 때문이 아니고 음주운전으로 감옥살이를 2년 하고 엊그제 출감했대.
오늘은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를 당신한테 해 주고 싶었다. 별로 재미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얘기를.
© 서 량 20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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