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68. 미쳐 미쳐 미쳐

서 량 2008. 11. 24. 09:39

 요사이 한국 대중가요 제목에 ‘미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직업의식도 있고 해서 좀 생각을 해봤다. 2001년에 나온 이정현의 노래 <미쳐>를 위시해서 올해 2008년도 히트 송 ‘MC 몽’이 부른 <미치겠어>의 달콤한 후렴이며 ‘바나나 걸’의 <미쳐 미쳐 미쳐>와 손담비의 <미쳤어>가 귀뿌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미칠 광(狂)은 ‘개사슴록 변(개: 犬)’에 임금 왕이 합쳐진 형성문자. 다시 말해서 개가 왕처럼 행동하면 그게 바로 미친 짓이라는 뜻이다.

 

 정신과에서 광증(狂症: psychosis)은 현실성의 결핍을 그 가장 근본적인 증상으로 삼는다. 현실(現實)은 ‘나타날 현’에 ‘열매 실’이 합쳐진 단어. 현(現)은 ‘임금 왕’에 ‘볼 견’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왕의 눈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개 눈으로 보면 광증이고 한 시대의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바로 현실이라는 정의가 내려진다.
 
 ‘psychosis’는 본래 17세기경 라틴어로 ‘활발하다’ 또는 ‘살아있다’는 뜻이었고 말 뿌리가 같은 희랍어의 ‘psychein’는 ‘숨쉬다’라는 의미였다. 숨쉬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살아있음은 활발한 행동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삶은 일종의 광기(狂氣)를 내포하고 있다.

 

 삶은 광증이다. 영혼은 늘 길길이 미쳐 날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우주가 미친 듯이 펄펄 살아있음을 어찌하랴.
 

 당신은 기원 후 2세기의 로마 시인 아푸레이우스(Apuleius)가 쓴 <변신이야기>에 나온 프시케(psyche)의 신화를 기억하겠지. 이름 없는 왕국의 세 번째 공주가 워낙 빼어난 미모라서 미의 여신 비너스를 마다하고 뭇 남성들이 흠모하던 그 프시케를 말이지.

 

 질투심이 솟은 비너스는 아들 큐피드를 시켜 프시케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도록 한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첫 번째로 눈에 뵈는 이성과 미치도록 사랑에 빠지는 법. 이윽고 프시케를 본 큐피드는 그녀의 미모에 당황한 나머지 자기의 화살촉에 찔린다. 그는 그녀를 산 속 깊은 궁전에 데려가 밤이면 밤마다 사랑행각에 젖는다.
 
 큐피드의 프시케 사랑 전제조건은 절대로 자기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프시케는 두 언니의 꼬임에 빠져서 기름등잔을 켜고 아름다운 큐피드의 잠자는 모습을 본다.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이 몸에 떨어져 잠이 깬 큐피드는 약속이 깨졌다는 이유로 그녀를 떠난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 비너스에게 자기가 그녀와의 사랑에 빠졌음을 이실직고한다.

 

 비너스는 며느리 프시케에게 네 개의 어려운 테스트를 시킨다. 심지어 마지막으로는 지옥에 가서 미(美)의 비밀이 들어있는 상자를 가져오라 했지. 프시케는 모든 난관을 운 좋게 통과하고 천신만고 끝에 그 상자를 구해 오던 도중에 박스 뚜껑을 살짝 열어본다. 그 순간 깊은 잠에 빠진 그녀를 큐피드가 깨어나게 해 준다. 남녀는 곧바로 신의 황제인 큐피드 아버지 주피터에게 찾아가 허락을 받고 급기야 프시케는 인간인 몸에서 여신으로 '변신'한다.

 

 ‘psychosis’의 어원이 로마신화의 프시케에서 왔고 ‘영혼’과 ‘살아있음’과 ‘광증’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제 까무러칠 정도로 크게 깨우쳤을 것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엄격한 테스트에 합격해야 비로소 행복이 이루어졌던 인류의 신화는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가식 없는 바나나 걸은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 모든 허위의 가면을 벗어 던진 진솔한 빨가숭이 알몸의 진술이다.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왜 자꾸 내 맘 건드려. 왜 내 맘을 건드려. 알면서 뻔히 다 알면서. 내 맘이 땡긴다는 걸. 너에게 끌린다는 걸. 난 미쳐 미쳐 미쳐. 난 미쳐 미쳐 미쳐.”

 

© 서 량 2008.11.23

--뉴욕중앙일보 2008년 11월 2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