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당에서 물냉면이라 하지 않고 물냉이라 줄여서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마지막 말 하나를 뺌으로써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언어습관이다. 네 글자의 비빔냉면을 두 자로 줄여서 비냉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군만두는 물냉처럼 마지막 글자를 빼고 '군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식당 종업원들이 모여서 그런 약어(略語: 준말)를 쓰기로 합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영어에서도 'examination'이라 하는 대신 'exam'이라 하고 'advertisement'도 뚝 잘라서 'ad'라 한다. 정신과 환자의 정신감정을 뜻하는 'psychiatric evaluation'도 언제부터인지 누구나 'psych eval'로 급하게 약식으로 말한다.
약자(略字)를 'abbreviation'이라 하는데 이 어려운 말은 15세기 중엽에 중세 불어와 라틴어로 'make brief (짧게 만들다)'라는 뜻이었다. 쉐익스피어가 햄릿의 입을 빌려 한 말, 'Brevity is the soul of wit. (간결함은 재치의 핵심이다)'에서 'brevity'는 혀가 잘 안 돌아가는 'abbreviation'과 같은 어원이다.
두문자어(頭文字語: acronym)은 또 어떤가. 유네스코(UNESCO)가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머리글자만 따서 만든 단어라고 당신은 선뜻 기억할 수 있는가. 요즘 신문에서 한국인들이 미국을 손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비자면제프로그램', 'VWP' (Visa Waiver Program)의 약자는 얼른 머리에 떠오르시겠지.
말뿐이 아니라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Doctor' 대신에 'Dr.'라 쓰고 편지봉투에 'Massachusetts'라 일일이 쓰지 않고 'MA'라 쓴다. 혹시 잘못해서 'MA'를 소문자로 쓰면 '엄마'라는 뜻이 돼버린다.
당신은 한 30년 전만 해도 티브이 채널을 바꿀 때마다 티브이 앞에까지 걸어가서 똥그란 플라스틱 손잡이를 딸각딸각 시계방향 혹은 반대방향으로 돌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새는 푹신한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채널을 자유자재로 바꾸지 않는가.
우리는 '리모트 콘트롤'도 굳이 줄여서 리모콘이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성미가 급해지면서 아니러니(ironical)하게도 점점 더욱 더 게을러지고 있다. (물론 이때도 'ironical'에서 마지막 발음을 우리는 썩둑 떼어먹는다.) 성급함과 게으름은 부모자식처럼 같은 핏줄이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블로그를 쏘다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컴 앞에 앉았습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물론 '컴'은 '컴퓨터'의 약자. 한국인들은 '컴퓨터'를 꼭 '컴'이라 하는데 양키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computer'를 'com'이라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come'에는 1650년 경 '올가즘'이라는 뜻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1920년대에 급기야 그 비속어는 남자의 '정액'이라는 명사가 됐고 스펠링도 'cum'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명심하시라. 'cum'을 소리 내서 읽으면 '컴'이 된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더니 이제부터 당신은 '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낯이 좀 뜨거워질 것이다.
마음이 부산스럽고 다급해지는12월이 닥쳤다. 한 해를 마감하는 초조한 마음을 식히기 위하여 조만간 맨해튼의 코타 ('Korea Town'의 개인적인 약자?) 한국식당에 가서 물냉을 먹을까 비냉을 먹을까 한참 고민을 해볼까 한다.
(c) 서 량 2008.12.07
-- 뉴욕중앙일보 서량 컬럼 <잠망경> 2008.12월 10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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