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d'는 '떼' 또는 '무리'라는 말로서 범어의 'sardah'에서 비롯됐고 본래 줄(열: 列) 혹은 그룹이라는 뜻이었다. 동물이 떼를 지어 무리 생활을 할 때 옆으로나 앞뒤로 줄을 짓는 모습에서 온 말이다.
이것을 한자로는 군(群: 무리 군)이라 표기하는데 '임금 군'에 '양 양'을 합쳐서 만든 형성문자로서 양 같은 가축이나 동물 집단을 의미한다. 어원학자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무리 군자에 양이 들어간 것을 보니 군(群)은 우리가 짐승을 인식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목동이라는 의미의 'shepherd'도 워낙 'sheep(양)'과 'herd'를 합쳐서 만든 말로서 양떼라는 뜻이었는데 양을 보살피는 사람이라는 뜻이 돼버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양과 그토록 친숙했다.
군중심리는 동물적인 속성을 지닌다. 우리말로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들을 '떼거지'라 하고 '떼쟁이'는 떼를 잘 쓰는 사람을 뜻한다. 떼를 쓴다는 말은 다수(떼)의 힘을 빌려 억지를 부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말에 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끽해야 '무리'나 '떼' 정도 밖에 없는 반면 영어에는 무수한 어휘들이 있다. 그들은 당신이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세밀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집단을 따로따로 분별해서 부른다. 사자 떼는 'a pride of lions'라 하고 새 떼는 'a flock of birds', 물고기 떼는 'a school of fish', 개미 떼는 'an army of ants', 벌떼는 'a swarm of bees', 올챙이 떼는 'a cloud of tadpoles', 그리고 양떼는 'a herd of sheep'라 하는 둥, 예를 더 들자면 입만 아프다.
이윽고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할 것이다. 우리말의 떼나 무리에 해당하는 말이 영어에는 왜 그다지도 차별화 돼있을까, 라며. 이것은아마도 양키들이 동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감식력에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며 동물 집단을 세분화시켜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윤선도(1587~1671) 같은 선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짐승은커녕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 같은 광물과 식물만을 가까이하며 고고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우리말에는 형용사의 다양성이 아주 세밀하게 있는 반면 영어의 형용사는 밋밋하고 싱겁다. 이를테면 우리말로 빨갛다, 붉다, 불그스레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하는 뉘앙스의 차이를 두는데 영어로는 끽해야 'red'와 'reddish' 정도가 고작이다.
더더구나 의성어나 의태어는 영어가 도저히 우리말을 쫓아가지 못한다. 예컨대 쿵덕쿵덕, 찰싹찰싹, 두리번두리번, 들썩들썩 같은 리드미컬한 수식어는 영어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수식어에 강하고 양키들은 명사에 강하다. 우리의 삶은 화려한 형용사 차원에서 아기자기하게 존속하고 양키들의 인생은 명사에 승산을 걸고 있다.
근래에 'herd mentality (무리 정신상태)'라는 말을 미디어에서 자주 접한다. 작금의 미국 경제위기에 대한 군중의 동태가 위태로우면서도 심리학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인간은 융(Jung)이 정신분석학자들을 빗대놓고 지적한 대로 어느 봄철 양지바른 연못 속 올챙이 떼처럼 꼬리를 흔들며 햇볕을 향하여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며칠 안 남은 11월 4일에 있을 이곳 미국 대통령 선거도 군중심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대륙의 군중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새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가듯 들소들이 떼를 지어 아프리카 대륙을 무턱대고 질주하듯 그렇게 우리와 양키들은 향방을 알 수 없는 무리 본능에 서로의 운명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 서 량 2008.10.26
--뉴욕중앙일보 2008년 10월 29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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