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65. 룰루랄라

서 량 2008. 10. 16. 22:09

수년 전부터 '룰루랄라'라는 우리말 유행어를 들어왔는데 노래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즐거운 마음을 뜻하는 말로 짐작된다.

 

인터넷 사전에 이 말은 나와있지 않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견디어 낸 속어라면 우리말 사전의 최첨단을 달리는 네이버나 엠파스 사전에 지금쯤 떡 올라와 있을 줄로 알았더니. 그런데 구글 검색 결과로는 자그마치 백십오만 몇 개의 목록이 뜬다.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 룰루랄라는 이제 개인 블록 명칭은 물론 노래방, 게임방, 식당, 서점, 쇼핑몰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쓰이는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됐다.

 

영어로 'lulu(룰루)'는 1886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슬랭인데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 특히 미모가 빼어난 여자를 뜻한다. 그리고 'lala(랄라)'는 1980년대에 출현한 'lala land(꿈나라: 유토피아)'라는 속어의 첫 부분. 그래서 룰루랄라를 직역하면 '예쁜 여자 꿈나라'가 된다. 2003년에 김건모가 부른 노래 <제비>의 가사 중에 거듭 반복되는 '룰루랄라'도 이중언어권 사람의 귀에는 그런 의미로 들린다.

 

'moon; room; loop; noose (달; 방; 고리; 올가미)'에는 다 '우' 발음이 들어간다. 이렇게 '우' 소리를 내는 단어의 뜻에는 경계선에 대한 긴장감이 있다. 달도 방도 고리도 올가미도 폐쇄공간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우'는 '아'처럼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시키기보다 외부의 힘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속성을 보인다. 관중이 운동선수를 야유하며 기를 죽일 때 '우~' 하지, 절대로 '아~' 하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아차!'하는데 양키들은 'oops!' 하며 입술을 오므린다.

 

남녀가 키스를 할 때도 닭 소화기관의 말단부위처럼 입술을 오므려야 쌍방의 에너지 소통이 이루어진다. 키스는 사랑하는 상대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빨아들이려는 본능의 발로다. 만약 그때 마치 의사 앞에서 편도선 검사를 받을 때처럼 아무런 흡인력이 없이 아~! 하며 입을 크게 벌린다면 무슨 남녀의 정감이 솟겠는가.

 

룰루랄라에는 '우'와 '아' 소리가 반반씩이다. '우'는 어두운 모음이고 '아'는 밝은 모음. 영어의 'I(나)'도 우리말의 '나'도 입을 활짝 벌린 '아' 발음이다. 그러나 'we'와 '우리'에 '우' 소리가 들어가는 것은 집단의식의 위기감이 에너지를 안쪽으로 쏠리게 하기 때문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도 같은 에너지 원칙에서 왔다.

 

'우'와 '아'가 공존하는 영어에 'ooh and aah'라는 숙어가 있는데 무엇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뜻. 예를 들어 'They oohed and aahed at the fireworks. (그들은 불꽃놀이를 보면서 감탄했다.)' 같은 표현을 흔하게 듣는다.

 

놀라움과 감탄을 표시하는 순도 99.9프로 영어 슬랭 '우랄라(ooh la la)'를 당신은 유심히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두운 '우'와 밝은 '아'가 알맞게 조합된 이 의성어는 중세 불어에서 유래했는데 성적(性的)인 의미가 듬뿍 들어있다.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의 '얼렐레'는 단순한 의혹이나 놀라움을 나타내는 간투사로서 '우랄라'의 섹슈얼 뉘앙스가 전혀 없는 듯하게 느껴진다.

 

잠깐만! 그렇지 않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감정표현은 대동소이하다. 당신은 초등학교 시절에 남자반장과 여자부반장을 짓궂게 놀려댄 적이 있는가. 누구하고 누가 뭐 했다면서 '얼레꼴레~' 하며 소리치던 순간들을 혹시 기억하는가. 룰루랄라, 우~아~, 우랄라, 얼렐레 같은 동서양의 탄성어에 깊이 숨어있는 우리의 리비도(libido: 성 에너지)를 아! 하고 환하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 서 량 2008.10.12
--뉴욕중앙일보 2008년 10월 15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