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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감상, 감동, 감화 그리고 감흥

서 량 2008. 10. 23. 07:49

 시인이 시를 쓰는 동기의식을 4가지로 구분해 봤지. 당신도 아다시피 앞뒤가 꽉 막히고 고지식한 사람들은 자꾸 사물을 분류하려고 덤벼들잖아. 예컨데 인종을 백인, 흑인, 황인(나나 당신 같은 사람)으로 분류하고 그 다음에 또 무슨 인종이 있나 하며 하며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궁금해 하는 식으로.

 

 첫 째 부류는 걸핏하면 감상(感傷)에 젖는 감상주의 시인들이야. 자기의 감상을 남들에게 피력하려고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이지. 만약에 당신이 "가을이 오면 슬프다"는 둥, "낙엽을 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둥 하며 중학교 문예반 식의 시를 쓴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당신을 이 부류에 집어넣을 것이다. 주로 넋두리나 신세타령을 하는 시인들이지. 그들의 시는 유행가 냄새가 좀 나면서 대중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있지.

 

 둘 째 부류의 시인들은 다른 사람 마음에 감동(感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눈에 불을 키고 밝힌다구. 굵거나 애절한 목소리로 약간 변사 티를 내면서 목청을 돋군다니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기도 하고, 나 보기야 역겨워 가실 때에는, 하며 눈을 내리깔기도 하는 거야. 남을 감동시키면 지 기분이 좋아지는 시인들.

 

 셋 째로는  남을 감화(感化)를 시키려고 눈과 목에 힘을 주는 똥폼 잡는 시인들. 눈 앞에 사람만 얼씬하면 이들은 이래라 저래라하는 명령조의 언사를 불사해요. 대개 훈장출신, 특히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사고방식이 공자왈맹자왈을 벗어나지 못한다구. 구공탄을 발로 차지 말아라! 하며 훈시도 하지. 내가 시를 하나 썼는데 그 내용인즉, 당신은 모쪼록 나라에 충성하고 아침 저녁으로 양치질을 열심히 하고 조기조침을 해서 건강에 힘쓰라! 하는 식으로 썼다면 그 시를 읽으면서 당신 기분이 어떻겠니. 근데 그 따위 발언을 하기가 스스로 낯 간지러운 시인은 슬쩍 간접적으로 무슨 큰 깨달음을 교시하는 시를 쓰지.  지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야. 어떤 때는 그게 지 자랑인지 독자들을 감화시키려는 방편인지 알 수가 없어. 남들에게 득도를 권장하는 시인들이지. 살길은 득도 밖에 없어! 하는 사람들. 당신이 혹시 그런 시를 접하는 순간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네 잘 알겠습니다" 하며 나즉하게 속삭여야 해. 말한 사람의 체면을 봐서라도. 참참, 당신이 만약 신춘문예에 떡 당선되고 싶으면 이런 시를 쓰면 가능성이 많을 거야.

 

 넷 째, 마지막으로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쓰는 시인들이야. 한편의 시를 읽었을 때 값싼 감상에 빠지거나 뻐근한 감동이나 메스꺼운 감화를 받지 않는 대신에 어떤 신나는 감흥에 빠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이제 감상에 빠질 나이는 지난듯 싶고 감동이야 좋은 영화를 보면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고 워낙 남에게 억지로 감화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터득하는 법을 익히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흥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야. 나는 중요한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해. 내가 당신에게서 감화를 받기 보다는 당신을 정겹게 즐길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내 예술성이랄 수 있어. 이거 내가 절대로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대체로 시인들은 이 네가지 유형의 중첩현상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어떤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 당신은 어느 유형으로 쏠리니. 근데 내가 한 말에 너무 신경 쓰지마. 어디까지나 내 편견에 지나지 않아요. 시인들 중에 얼마나 높은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당신도 아다시피 나는 이런 화제를 들먹이면서 큰 소리 칠 입장도 지위도 못 돼. 그거 알잖아.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니까 그런가보다 하세요.


© 서 량 2008.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