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은 커다란 목소리가 아닌
속삭이는 듯 혼자말 비슷하게 하는 말이야.
오늘 내가 신임하는 주니어 정신과의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요새는 인간의 모든 감정 중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은 죄다
정신병, 혹은 정신병 증세로 취급을 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의사는 환자 감정의 자초지종을 듣고 싶은 의도도 없고
관심도 정열도 없는 상태에서
오우 예, 오우 예, 서너 번 하고 나서 얼른 처방전에 손을
뻗쳐서 아무 약이나 끄적끄적해 주는 실태인데. 정말 못할 말로
별 생각 없이 처방을 내린다 해도 약 기운 때문에
환자는 기분이 아리까리해지니까 자기가 빠져있었던
저조한 감정, 싫은 감정, 힘든 감정에서 잠깐 벗어난다 이거지. 그러니
환자말 귀담아 듣지 말고 한 5분 안으로 약처방을 내리면 어때, 하는 질문. 킥킥.
당신이 듣기에 어때. 내 질문이 좀 폼나지 않아.
이렇게 우리는 우스개 소리 비슷한 말을 주고 받으며 킬킬대고 웃었다.
야, 우리 차라리 신문에 광고를 내면 어떨까. 광고 문안을 뭐라 하지.
응, 그거야 간단해. "자기 자신이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쳐드립니다!"
하는 거야. 지 스스로가 마음에 들어 죽고 못사는 지독한 왕자병과 공주병 환자들만
빼놓고 양심적이고 고지식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거야.
근데 무슨 약을 쓰죠. 그런 사람들에게.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듯한 울분에 쌓인 사내, 계집들에게 효력이 있는 약이 어디 있겠어요, 하며
주니어 닥터가 내게 묻는 거 있지. 그래서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내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지. 이것 봐. 우리의 임무는
그들로 하여금 그저 자기의 기분과 정신상태와는 다른 차원으로만
리드해 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어쨌던 자기 감정을 탈피하게 도와주면 될 것 아니야.
하다가 나중에는 둘 다 시무룩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정신 나간 정신과의사들. 언제부터인지 당신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수상한 눈으로 보는 위험천만한 의사들.
© 서 량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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