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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좋은 詩와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구?

서 량 2008. 9. 20. 07:09

음악에 대하여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시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어 지금.

 

시에 관심이 있거나 시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눈에 불을 켜고 떠들어 대는 게 당신 뭔지 알아? 

'좋은 시'를 밝히는 거야. 이건 물론 '나쁜 시'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시인들이 요사이

앞을 다투어서 내는 책자를 보면 잘났건 못났건 자작시 모음집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명시선>을 내는 거야. 지 마음에 드는 좋은 시만을 싹싹 골라서

좋은 시라면 죽고 못사는 독자들에게 뵈 주는 거야. 독자들이 꼴깍 넘어간다구.

당신은 이런 짓이 좀 무책임한 짓이라는 생각이 안들어? 무조건 유명한 시인만 뽑으면 돼. 킥킥.

우습지. 이건 명시를 쓰지 못한 무명 시인들에게는 아주 괴로운 일이야.

 

당신도 뼈저리게 알다시피 우리들이 얼마나 '명문대학'을 밝히니. 안 그래?

그러니 명문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은 '명문대학 일람표'라는 책이 출판된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어.

속 시원하게 미국식으로 말하면 하바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말이니?

 

근데 참 이상하지. 음악은 좋은 음악이나 나쁜 음악으로 판가름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지 않는 음악, 심지어는 싫어하는 음악을 들먹이잖아. 왜 그럴까.

이거 뭐야.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좋고 나쁨의 기준보다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를테면 한 개인의 취향이 문제가 된다는 말일까. 그렇다고 해서 시에는 절대적인

척도가 있고 음악에는 고전이건 팝송이건 명음악(?)의 기준이 없다는 얘기야?

 

영어 속담에 'Beauty is in the eyes of the beholders' 라는 말이 있어요.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 눈 속에 있다'는 말이야. 속 시원하게 말하면

미(美)의 척도는 각자각자의 취향과 편견에 딸렸다는 뜻.

 

미술도 음악도 시도 모든 예술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감성을 교류하는 수단일 거야.

우리가 같이 웃고 같이 흥분하고 같이 슬픔을 나누고 같이 화도 내고 하는 그런 '공감대'

(몇 달전에 공식석상에서 이 말을 성감대라고 자기도 모르게 입에 튀어 나온 적이 있어, 킥킥)를

형성하는 게 그 과정이요 결과요 목적일 거야.

 

이것 봐. 내 말 좀 들어 봐. 유명시인이 들먹이는 '명시선'이 시에 있어서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판단의 기준이 된다구? 천만의 말씀! 공자왈 맹자왈 선생님왈 선배왈 시집출판사사장왈 같은 것으로

좋은 시와 나쁜 시가 판가름 난다구? 그렇다면 예술 감상자들은

예술 선생들의 고분고분하고 머리 나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 지나지 않는다구?

 

© 서 량 2008.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