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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자살에 대한 냉정한 견해

서 량 2008. 10. 4. 09:09

 이거 내가 절대로 당신에게 잘난 척하거나 건방을 떠는 얘기가 아니라 진실로 진실로 성심껏 하고 싶은 얘기인데. 나 지금껏 30여년을 그 숱한 정신과환자들을 보아왔던 중에 자살한 환자들이 꽤 많이 있다. 통계적으로 우울증 환자 중에 15퍼센트는 세상이 두 쪼각이 나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자살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아주 철두철미하게 물샐틈 없는 계획을 하고서 하는 자살도 있어. 역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짓이야. 대다수는 자살미수에서 그쳐야 했을 일이 뭐가 잘못돼서 성공적인 자살이 되는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자살의 충동심을 이기지 못해서 하는 자살이 제일 많다고 보아야 할지도 몰라.

 

 화제가 화제인 만큼 말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정신과 전문의로서 내가 지켜온 내 신조를 분명히 밝혀야 될 것 같다. 즉 그것은 자살이 우울증의 결과가 아니라 충동을 이기지 못하거나 판단장애의 결과라는 것. 아니면 충동심과 판단장애 둘 다가 합쳐진 끔직한 결과라는 것.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슬픔에 깊은 동정심을 품기 마련이야. 그러나 다른 사람의 충동적인 행동이나 그릇된 판단에 대해서는 여간하지 않고서는 동정심을 품지 않을 뿐더러 품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가짐은 충동심이나 판단장애를 권장하는 결과를 자아내기 때문이야. 이거 아주 단순한 이론이야.

 

 당신에게 쉽게 말해 줄게. 사람은 슬프고 괴로워서 자살을 하는 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지 않거나 싫다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야. 이거야 말로 이를테면 언론의 자유야. 그리고 나도 당신도 그 생각에 동정이나 동조하지 않을 자유 또한 있어.

 

 오죽하면 카돌릭교에서는 교리로서 자살을 금하겠어. 당신도 아다시피 나는 카돌릭신자도 아니야. 그러나 내가 늘 동정은 커녕 괘씸하기 짝이 없이 생각하는 것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안하무인적인 이기심이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얘기가 끝장이라는 생각. 괴로움의 중단만을 위한 행동이 자살이라는 견해도 있어. 얼른 생각하면 불쌍하게도 여겨지는 이 망인의 뻔뻔스러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한 마디로 남들이 안중에 없다는 거야.

 

 내 환자 중에 하나는 12살 때 자기 아버지가 권총자살을 했대. 마침 또 그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내 환자야. 이제는 거진 50 중반이 된 이 남자는 아버지 자살 이후 지금껏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그 끔직한 장면을 요사이도 가끔 꿈에 보면서 몸서리를 친대. 자기는 아무리 죽고 싶어도 자기 부인과 자식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죽어도 자살을 안하겠다는 공언을 했어. 나는 그 환자를 참 좋아하고 믿고 존경해. 사람이 됐어. 그러니까 사람이 덜됐거나 못된 것들이 자살을 하는 것이라고 이제 당신은 차갑게 말을 해도 괜찮아.

 

 남들과의 결속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존재이유와 가치가 아니겠어? 내 괴로움만 없어지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뻔뻔스러운 사람들에게 나는 추호의 동정심을 품지 않는다. 물론 한 인간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야 잠시 있겠지만. 

 

© 서 량 2008.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