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서재의 홍수

서 량 2008. 10. 17. 21:49

                     

                    컴퓨터가 으릉으릉 작동하는 만큼
                    사이버 공간은 버젓한 현실이에요
                    거기에는 푸른 초원 비키니 차림의 금발미녀
                    새빨간 낙엽 그리고 한 없이 비상하는 새들이 있어요
                    당신이 거기를 잠옷바람으로 훨훨 날아다니네요
                    마우스 버튼이 딸각거리는 박자에 맞춰 당신 몸이
                    1280 by 1024 설정의 화려한 pixel로 척척 덮혀요

                     

                    방명록 속에 숨어있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의 가자~ 어디로~ 아무데로나~♬~ 하는
                    오케스트라 *tutti 부분을 들어 보세요
                    연미복을 입은 벽안의 피아니스트의 열 손가락이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열광하고 있어요
                    즐겨찾기를 빽빽히 채운 연립주택 버전 2에
                    장대비가 내리칩니다 금세 소프트웨어가 흥건해졌어요
                    자판 위로 굵은 빗방울이 참았던 눈물처럼 뚝뚝 떨어집니다
                    도처에 빗물 빗물 빗물 빗물
                    가자~ 어디로~ 아무데로나~♬~
                    띵 띠끼 띠끼띠끼 띵 띠끼 띠끼띠끼
                    광분하는 피아노 건반이 저리도 들썩들썩하는 게 보이나요
                    pixel pixel pixel pixel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지지직
                    지지직 작열하며 모니터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당신 서재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물바다가 됐네요
                    그건 전기현상이 부글대는 무궁한 별바다일지도 몰라요
                    삼원색의 pixel들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에 박자 맞춰 유유히 흘러가는 중입니다
                    당신도 들리나요? 찢어진 방명록에서 터지는 음악이?
                    가자~ 어디로~ 아무데로나~♬~
                    띵 띠끼 띠끼띠끼 띵 띠끼 띠끼띠끼


                    *총주(總奏): 연주에 참가하는 모든 주자들이 동시에 연주하는 것을 뜻하는 음악용어

                    © 서 량 200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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