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60. 신(神)과 귀신

서 량 2008. 10. 1. 08:36

 요새처럼 찜통 더위에 귀신에 대한 얘기를 해서 당신의 등골을 서늘하게 해 주리라. 소름이 오싹오싹 끼치게는 못한다 치더라도.

  혼, 영혼, 정령, 혹은 귀신이라는 뜻으로 'ghost'가 있지. 카톨릭교의 성부, 성자, 성신에서 성신을 'Holy Ghost'라 한다. 비슷한 발음의 고대범어로 'ghoist'는 흥분하거나, 놀라거나, 무서워한다는 의미였고 우리말의 '귀신'에도 거의 같은 뜻이 함축돼 있다. 사람의 감정 중에 가장 신비스러운 감정은 역시 공포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신(神: God)'은 옥편에 '귀신 신'으로 나와있다. 물론 신도 귀신도 둘 다 한자다. 그래도 우리에게 신보다는 귀신이 더 흔하게 쓰이고 친근감이 있는 말이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오 마이 갓!'을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오 내 귀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이 말이 무슨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생각해 봐요. 귀신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뼈빠지게 일하는 농사꾼들의 볍씨를 까 먹겠는가. '귀신 듣는 데서는 떡 소리도 못한다'는 속담도 재미있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은 또 어떤가.

  우리의 귀신(God)들은 공복감에 시달렸다. 얼마나 인간적인 귀신들인가. 그래서인지 우리는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귀신에게 먹을 것을 권하고 '귀신도 사귀기 나름이다'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는 '귀신도 모르게' 무슨 일을 한다는 관용어도 쓴다.

  반면에 양키들의 신이 배고파 한다거나 슬프고 원통해서 통곡을 한다는 것이란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다. 그들의 신은 가끔씩 인간들을 향하여 심기가 불편하면 시시때때 천지를 뒤흔드는 재앙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서구의 신은 완전 권위주의적인 존재다.

  자연은 어떤가. 양키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동양인들은 자연에 순응하지 않았던가. '귀신을 찜쪄 먹는다'는 속언처럼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귀신을 향한 도전의식이 있었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그러나 양키들은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으면서 자연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으로 이른바 서구의 문명을 건설해 왔다.

  라틴어 속담에 'Mens sana in corpore sano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말이 있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아주 유물론적인 개념이다. 근데 바로 이 'men'이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에 쓰였던 언어로 추정되는 전인도유럽어로 '생각하다; 기억하다(remember); 상기하다'라는 뜻이었고 고대 독일어로는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mental hospital (정신과 병원)'의 'mental'도 이 'men'에서 비롯된 단어다. 아멘(Amen)의 'men'도 혹시 같은 말뿌리에서 오지 않았나 싶은데.

  정신과 환자를 보면서 평생 처음으로 '정신(精神)'이라는 한자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 봤다. '精'은 '정할 정'. '쌀 미'부에 '푸를 청'이 복합된 글자. 한자에서 푸를 청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하늘이 푸르면 날씨가 맑고 날씨가 맑으면 삼라만상이 깨끗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리고 '神'이야 물론 '귀신 신'자. 그러니까 정신이라는 말은 깨끗한 귀신이라는 뜻이다.

어릴 적에 듣던 납량특집 라디오드라마에서 한여름의 무더위를 쫓아주던 원한 맺힌 귀신들은 사실 살아 생전에 정신과 의사를 봤어야 됐을 사람들이었다. 우리 전통적인 옛날 습관에 의하면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 중에 죽은 후에라도 무당의 도움을 받아 귀신 마음이 편해지도록 만드는 행사, '굿'이 있다. 근데 그러면 공포영화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여름 밤의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으흐흐.

© 서 량 2008.08.03
--뉴욕중앙일보 2008년 8월 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