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62. 대화는 사랑의 씨앗

서 량 2008. 10. 8. 08:52

 

우리는 말을 혀로 한다. 'language(언어)'는 라틴어로 혀라는 뜻의 'lingua'에서 유래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 중에 국수에 조개 소스를 가미한 링귀니(linguini: 작은 혀)도 국수가 혀처럼 납작해 보인다 해서 생긴 말이다.

 

이중언어를 'bilingual'이라 한다. 이것은 즉 두 개의 혀를 갖고 다니다가 적재적소에 합당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의미. 그런데 슬랭으로 'speak with a forked tongue'은 뱀처럼 갈라진 혀로 하는 일구이언(一口二言)이라는 뜻이다. 머리가 명석한 당신은 두 개의 혀와 갈라진 혀를 혼동하면 안 될지어다.

 

'speak'는 본디 무엇을 흩뿌리거나 퍼트린다는 의미로서 'spray'나 'sprinkle'과 말뿌리를 같이한다. 연설을 한다는 것은 말로서 다른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에 물을 주는 행위에 비유된다. 니체의 <자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1987)에서도 독일어의 'sprach'에는 'sprinkle'처럼 'r'이 그대로 남아있다. 

 

미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도 인간의 최고기능은 역시 연설을 잘해서 타인들을 감복시키는데 참뜻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수기(撒水器: sprinkler)가 잔디에 물을 뿌리듯 정치가와 설교자와 글쟁이들은 말로서 정책과 복음과 감동을 전파하는 것이다. 

 

'tell'도 말한다는 뜻이지만 뉘앙스가 좀 다르다. 고대영어에서 'tell'은 숫자를 계산한다는 의미였다가 12세기에서야 어떤 사실을 말해준다는 뜻으로 변했다. 지금도 날렵한 손놀림으로 현금을 대출하는 은행 창구직원을 'teller'라 한다. 

 

정치가나 설교자나 글쟁이가 말을 할 때는 청중의 심리판단에 대한 계산이 빨라야 한다. 어원학적 차원에서 보면 작년에 한국을 선풍처럼 휩쓴 '원더 걸스'의 노래 <텔 미>에는 '말해 줘'가 아닌 '계산해 줘'라는 저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say'는 전인도유럽어의 'sokei-'에 뿌리를 둔 말로서 '보여주다; 지적하다; 입증하다'는 의미였다가 나중에 말한다는 뜻으로 변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어떤 내적 상황을 외부 사물에 투사시킨 후 그것을 손가락질하는 메커니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관용어에 'You can say that again!'은 '맞는 말이에요!'로 번역하고 'You don't say!'는 상대방이 무슨 공갈협박을 했을 때 '아이구 무서워라!' 하며 빈정대는 슬랭이다.

 

엊그제 양키 여자환자와 정신상담을 하는 도중에 'I feel pretty good when I conversate with you'라는 말을 들었다. 나와 대화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는 뜻으로 짐작했는데 굳이 지적은 하지 않았지만 'converse(대화하다)'라고 했어야 올바른 영어였다. 필시 그녀는 'conversation'이라는 명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단어를 동사로 만들어서 'conversate'라고 사전에도 없는 말을 근사하게 한 것이다.

 

14세기 중엽에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 동시에 생겨난 'converse'는 문자 그대로 '대화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16세기 초에 'conversation'에는 남녀가 통정한다는 의미도 생겨났다. 이렇게 양키들 언어의 변천사는 눈물겹도록 변화무쌍하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라. 현대영어에는 그 음란한 의미가 사라졌지만 인간 남녀의 정이란 길거리의 강아지처럼 서로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가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데서 싹튼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는 점에 대하여. 눈웃음이라도 치면서 'You can say that again!'이라고 말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 서 량 2008.09.01
--뉴욕중앙일보 2008년 9월 3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08/09/02/society/opinion/684532.html

 

[잠망경] 대화는 사랑의 씨앗

우리는 말을 혀로 한다. ‘language(언어)’는 라틴어로 혀라는 뜻의 ‘lingua’에서 유래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 중에 국수에 조개 소스를 가미한 링귀니(linguini·작은 혀)도 국수가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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