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은 '같이' 또는 '함께'라는 라틴어 접두사로 영어에 자주 쓰인다. combine(결합하다), companion(동반자), communication(의사전달), 그리고 하다 못해 communism(공산주의)도 다 'com'으로 시작한다.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forte'가 '강하게'라는 뜻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comfort'는 '함께 강하게 해 주다'는 의미에서 '위로하다'라는 말이다. 'compassion'은 희랍어의 'pathos(아픔)', 혹은 라틴어의 'passio(괴로움)' 앞에 'com'이라는 접두사가 들어가서 '동정심'이라는 뜻이 됐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괴로워하는 마음이다.
공산당원들이 서로를 점잖게 부를 때 '동지(同志)'라 칭하는데 영어로는 'comrade'라 하고 그것 또한 'com'자 돌림이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동무'의 어원은 김민수 어원학자에 의하면 '동모(同謨: 한가지 꾀)'에서 유래했다 한다. 동무는 시쳇말로 동호회다. 이것은 공산주의 동아리 패거리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애정 어린 호칭이다.
경희대 국문과 서정범 교수에 의하면 일본말의 '도모(tomo: 友人)'도 동무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언어의 전파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으로 갔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이런 학설을 내세우면 일본인들은 '도모'라는 말이 일본에서 먼저 생기고 그 말이 한국으로 그리고 나중에 중국으로 갔다고 바락바락 우길 것이 분명하겠지만.
'함께(with)'라는 의미로 고대 라틴어로는 'com'이라 하지 않고 'cum'이라 했는데 그 잔재가 아직도 'summa cum laude(수석 대학 졸업생)'라는 단어에 남아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현대어 슬랭으로 'cum'은 남자의 정액이라는 뜻이니 언어의 변천사가 참으로 속절없다.
'come'은 남녀의 사랑행위가 극치에 도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분출된 체액을 'come'이라 한다. 그것을 문자를 독특하게 바꿔서 1973년부터 포르노 작가들이 'cum'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고 요새는 일반 슬랭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com'과 같은 뜻으로 한자로는 '한가지 동(同)' 또는 '한가지 공(共)'이라는 단어가 옥편에 나와있다. 양키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키면서 독립적으로 공존하는 반면에 우리는 인간의 결합조건을 '한통속'이라야 한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한가지 동'과 '한가지 공'에서는 전제주의 냄새가 물씬 난다. '동(同)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시라. 아래가 뻥 뚫린 네모 안에 하나(一)의 입(口)만 있지 않은가. 이 상형문자는 이견(異見)이 분분한 언론의 자유를 일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에 전세계를 휩쓸던 '닷컴'의 열풍은 또 어떤가. 이때의 '컴'은 'command(명령)'의 약자로서 모세의 십계명(Ten Commandment)과 말의 뿌리가 같다. 당신을 좀 놀리거나 혼동시켜도 괜찮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두루두루 쓰이고 있는 '컴'은 함께라는 말도 아니고, 정액은 더더욱 아니고, 한가지라는 뜻도 아니고 다만 '컴퓨터'를 지칭할 뿐이다. '컴'은 '퓨터'라고 발음을 하는 시간을 매우 아까워하는 네티즌이 부리는 성급함의 좋은 표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적인 투표결과가 네티즌들의 공이 컸다고 한다. 작금의 광우병에 대한 촛불시위도 '컴'을 통하여 '한가지 뜻'이 연일 관철되고 있다는 정황이다. 바야흐로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힘은 '닷컴'의 명령체제에서 오는 것이려니 이것은 또 무슨 도깨비 같은 시대추세인가. 누가 우리에게 명령어를 자판으로 때리고 있는가.
© 서 량 2008.06.08
--뉴욕중앙일보 2008년 6월 11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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