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54. 만지기와 빼앗기

서 량 2008. 8. 13. 07:46

 'take'라는 단어를 시사영어사 94년도 판 영한사전에서 찾아 보니 잡다, 붙잡다, 얻다, 받다, 가져가다, 데려가다, 고르다, 받아들이다, 맡다, 취하다, 등, 타동사로 30개, 뿌리를 내리다, 미끼에 걸리다, 등 자동사로 11개, 그리고 취득, 매상고 등 명사가 5개로, 장장 두 페이지 반에 걸쳐서 그 뜻과 해설이 잡다하게 펼쳐져 있다. 이것은 즉 'take'에 해당하는 딱 한마디의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는 사연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take'는 거칠고 생소하고 어려운 영어다. 우리들 입에서 저 흔해 빠진 'Take it easy' 혹은 'Take care'도 적재적소에 총알처럼 재빠르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짧은 관용어에 해당하는 개념이 미국식으로 머리 속에 꽉 박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끽해야 '슬슬 하세요' 또는 '조심하세요' 하는 식으로 억지 번역을 할 수는 있겠으나 도저히 하루에도 열두번 씩 입에 오르내리는 영어의 친숙한 뉘앙스를 쫓아 가지 못한다.

 
'I am taking you out to dinner' 하면 당신에게 저녁 사주러 데리고 나가겠다는 말이다. 앞 뒤 문맥이 중요하겠지만, 'to dinner'를 싹 빼고 'I am taking you out' 하면 1939년 이후 미식축구용어에서 파생된 슬랭으로 '너를 없애버리겠다'는 말이 된다. 우리 말에도 저승사자가 누구를 '데려간다'는 뜻은 썩 좋은 뜻이 아니다.

  'There is a guy with a gun outside the building swearing he would take everybody out'(건물 밖에서 웬 놈이 총을 들고 다 죽이겠다고 떠들어대고 있어요) 할때, 이건 문자 그대로 공포영화다.

 

 'take it out on someone' 하면 누구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뜻이 돼 버린다. 'Don't take it out on me (나 한테 화풀이 하지 마)' 다시 말하지만 'take'는 이렇게 거칠고 사나운 말이다. 'Let me take him (그 놈은 내가 맡겨: 싸울 때 하는 말)처럼.
 
  조금 뉘앙스가 빗나가기는 하지만 'She took him by the storm (그 여자는 그 남자를 폭풍으로 붙잡았어)' 하면 무슨 뜻이냐구? 그거야, 그 여자가 그 남자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는 뜻이지. 머리를 써요, 머리를.

  'take' 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tacan' 에서 12 세기에 고대영어 쪽으로 유입된 말로서 '잡다' 라는 뜻이 그 본래 의미였고 '만지다'는 뜻의 'touch' 와 뿌리가 같다. 즉, 만지거나, 잡거나, 취득한다는 말이다. 'take'가 그토록 사납게 들리는 이유는 이렇게 '빼앗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한말 개화기 시기에 양키들이 한국에 진입하여 채광권을 장악하던 시절에, 한국사람들이 금을 훔쳐 갈까봐 '만지지 마!' 하는 의미의 외국인 상대 엉터리 영어로 걔네들이 하던 뜻의, 'No touch! (노 타치)'에서 '노다지'라는 말이 파생된 것을 기억하는가. 나중에 그 뜻이 와전되어 노다지는 금 광맥이나 아주 수지 맡는 좋은 일을 뜻하는 우리말 슬랭이 된 것을 당신은 또한 알고 있겠지.

  우리말에도 '잡다'는 말에는 소를 잡다, 닭을 잡다, 에서 처럼 죽인다는 뜻이 있다. 잡아 먹는다는 말도 같은 의미고, 아이구 사람 잡네, 할때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다른 인간이나 동물을 터치 한다는 것은 빼앗거나 죽이는 같은 그런 파괴적인 요소를 띄고 있다. 오호 애재라, 이렇듯 동물과 동물이 서로를 만진다는 것이 서로를 망가뜨린다는 슬픈 사실을 갑짜기 깨닫는 당신의 심정은 지금 어떤가.

© 서 량 2008.05.09
--뉴욕중앙일보 2008년 5월 15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