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53. 욕심쟁이 양키들

서 량 2008. 7. 20. 22:11

 'I have two children'을 '애가 둘입니다' 또는 '애가 둘이 있습니다'로 번역하지 않고 직역해 '저는 애를 둘 갖고 있습니다' 하면 현재 뱃 속에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영어의 표현은 내 것과 남의 것이 차이가 뚜렷하다. 다시 말해 소유의 개념이 확실하다. 우리말은 '우리집'이나 '우리 와이프'(?)처럼 공동 소유격을 쓴다. 국가도 양키들은 '내나라(my country)'라 하고 한국인들은 '우리 나라'라 한다. 우리는 절대로 '내 나라'라 하지 않는다.

 

 사람이거나 시간이나 뭐든 하나같이 소유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I have lots of friends; I have too much time; I have a good idea' 하는 식으로 늘 양키들은 'have'가 입에 붙어 있다. 반면에 우리들은 친구가 있고 너무 시간이 많이 있고 좋은 생각이 있다 하는 식으로 그냥 '있기'만 할 뿐이지 인생 제반사가 전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다. '좋은 주말을 보내세요'도 양키들은 'Have a nice weekend'라 해서 주말이 온통 자기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과 주말을 '갖는' 사람들의 차이점이 닭살이 돋을 정도로 분명하지 않은가.

 

 당신은 중학교 때 영문법 시간에 현재 완료 과거 완료 미래 완료 등 소위 영어의 시제(tense)에 대해 배우던 생각이 나는가. 'have'에다가 과거분사를 붙이면 현재 완료형이 된다. 그래서 'I have done my homework' 하면 숙제를 지금 막 끝냈다는 얘기.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말하자면 사물이 내 것이 됐을 때만 완전하게 일의 매듭을 본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모름지기 'have'를 써야 할 것이다. 좋게 보면 철저한 책임감의 소치인 듯 하지만 어찌 보면 양키들은 'have'를 통해 소유욕을 과시하고 있다.

 

 'They are having it out now' 하면 '그들이 지금 싸워서 결판을 내려고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의미상으로 봤을 때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내놓고 털어 놓는다는 말이니 이 어찌 살벌한 판가름의 마당이 아니겠는가.

 

 'have it all together' 즉 '모든 것을 함께 갖고 있다'는 관용어는 60년도에 크게 유행한 슬랭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최고의 콘디션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He really has it all together'하면 그사람 정말 몸과 맘이 삐까 번쩍한 상태라는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역시 'have'를 쓴다. 'He has his ass in a sling(그놈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어)' 이것은 궁둥이가 쇠사슬에 걸려있다는 의미로서 1930년대 부터 쓰던 아주 고약하고 천박한 말이니까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기왕지사 저급한(低質) 슬랭을 거론한 김에 한가지만 더 말할까 한다. 80년대 유행했던 말로 'have one's dick in one's zipper' 라는 말도 꽤 재미있다. 에헴,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뜨끔해지는 말이다. 'I have my dick in my zipper (음경이 지퍼에 걸렸어: 아주 난처해 죽을 지경이야)'

 

 무엇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요 동물의 습성이다. 그리고 갖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개념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양키들의 의식구조 속에 도사리고 있는 노골적인 소유욕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미국에서 35년을 살았더니 적잖이 미국화가 되어서일까.

 

© 서 량 2008.04.26
--뉴욕중앙일보 2008년 4월 30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