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57. 늑대 사랑

서 량 2008. 9. 11. 18:43

 

고대영어로 'love'를 'lufu'라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누구나 얼른 쉽게 알아듣는 말이다. 처음에 동사로 쓰이다가 '애인'이라는 명사의 뜻이 생긴 것은 1225년. '성교하다'라는 의미의 'make love'는 1580년경에 은유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아주 노골적인 용법으로 대두된 것은 미국영어에서 1950년대부터다.

 

우리말 사전에 '사랑'은 1.남녀가 서로 끌려서 좋아함; 2.남을 돕고 이해함; 3.사물을 소중하게 아낌; 4.부모 자식간이나 위 아래 사람들이 서로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별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도 고대 희랍인들이 사랑을 1.색정(eros); 2.호의(agape); 3.좋아함(phileo); 4.부모자식간의 유대감(stergo)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던 사고방식이나 한치도 다름이없다. 두 민족이 다 마늘을 좋아하는 식성에서였는지 머리가 좋은 그들과 우리는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희랍신화의 'Eros'는 성적(性的)인 사랑을 맡아 주관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Eros'는 생의 근간을 이루는 자기와 종족을 보존하는 원동력으로 해석한다. 같은 맥락으로 로마신화에서는 'Venus' 여신이 사랑과 미(美)를 위하여 아찔하게 요염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너스는 욕망이라는 의미의 고대범어 'vanas'와 어원이 같다. 비너스가 태양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지구 바로 옆의 별 금성(金星), 즉 샛별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1290년경. 그러나 그런 신선한 이미지에서 아뿔싸! 17세기 중엽에 'venereal disease(성병)'이라는 말도 'Venus'에서 파생됐다. 어원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성병은 '사랑 병'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는 늑대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wolf'는 고대영어에서 'wulf'라 했고 현대불어로 '암늑대'를 'love'와 너무나 발음이 비슷한 'louve'라 한다. 암늑대를 현대 이태리어로 'lupa'라 하는데 로마시대 속어로 'lupa'는 창녀 혹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자를 뜻했다. 당시 색욕이 강했던 로마여자를 늑대에 비유를 했다는 사실이 당신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할 것이다.

 

양키들이 늑대를 성에 굶주린 남성에 비유한 것은 1847년이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그것을 압도했다는 사연인가. 우리말에서도 남자는 늑대에 비유되고 여자는 여우에 비유되는 것을 보면 인간은 동물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옥편에서 '사랑 애(愛)'를 찾아봤다. 이 글자는 본디 '천천히 걸을 쇠(夊)' 위에 '마음 심(心)' 그리고 맨 꼭대기에 '기운 기(氣)'의 옛글자가 합쳐진 그림이다. 그러니까 중국적인 사랑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다가설까 말까 하며 천천히 걷는 그 망설이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일견 사려가 깊은 듯하면서도 상대에게 슬금슬금 접근하는 행동이 좀 엉큼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사랑의 우리말 어원도 살펴보았다. 경희대 서정범 명예교수 어원학자는 사랑이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의미라면서 한자의 ‘사량(思量)’에서 파생됐음을 암시한다. 옳거니!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서로를 자주 생각하고 마음을 저울질하고 헤아리려는 법이려니.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중국인들처럼 서서히 다가서는 행동이 아니라 아주 정적(靜的)인 사랑이다. 그들은 사랑을 발로 걸어서 하고 우리들은 머리 속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당신 생각은 어떤가. 로마 여인들의 늑대처럼 게걸스러운 사랑과 중국인들의 엉큼한 사랑과 우리들의 대뇌(大腦)적인 사랑의 차이점이 좀 그럴 듯하게 들리는가. 가장 동물적인 성향에서 가장 지고지순(至高至順)한 경지에 이른 듯한 인류의 진화과정이란 이런 것인가. 과연 이게 다일까.


© 서 량 2008.06.22
--뉴욕중앙일보 2008년 6월 25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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