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52.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라

서 량 2008. 7. 10. 06:48

 영국의 존 오스본(John Osborn)이 1956년에 발표한 '성난 얼굴로 뒤돌아 보라(Look Back in Anger)'라는 희곡을 당신은 혹시 기억하는가. 중산층 부부간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불만이 가득한 시대상을 그린 희곡을. 예나 지금이나 글쟁이들은 시대를 앞서간다. 대체로 첨단적인 사상은 유럽에서 발생한다.

 

 마침 또 때를 맞추어 미국에서는 이듬해1957년에 잭 케루액 (Jack Kerouac)이 'on the road(노상에서)'라는 소설을 씀으로써 명실공히 당시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이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은 비트제너레이션의 시대였다. 'Angry young men'이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이유 없는 반항>에 나왔던 극심한 혼돈과 우울한 반항끼로 얼굴을 도배한 제임스 딘(James Dean)이 당대에 기여한 풍조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무기력으로 고통 받는 젊음의 초상화였다. 그래서 당시의 우상이었던 그는 비트 제너레이션답게 오토바이를 폭주하다가 죽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던 히피족들이 출현하기 직전 시기의 미국은 그렇게 암울했다.
 
 'beat generation'의  'beat'는 많이 두들겨 맞은 결과로 심신이 괴롭고 피곤하고 노고지리함을 의미한다. 우리말 슬랭으로 더위 먹은 닭처럼 '빌빌댄다'는 뜻이다.

 

 영어에 '~ngry'라고 끝나는 단어는 아주 극심한 예외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사실 두 개 밖에 없다. 하나는 'angry', 그리고 또 하나는 'hungry'. 둘 다 그 뜻이 아주 고약하다. 골이 나고 배고프고 한 것보다 처절한 인간조건이 어디 또 있겠는가. 비트족들은 성을 내면서 허기와 대적했다.

 

 1360년 경에 'anger(분노)'는 'anxiety(두려움)'와 'anguish(고민)'이라는 뜻이었다. 'anger, anxiety, anguish'에서처럼  '앙~'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말에서도 '앙앙 울다'라는 말의 '앙'이면서 '앙심을 품다'에서는 참 고약한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앙(앵)'이 들어가는 말은 별로 좋은 뜻이 될 수 없다.

 

 독일인 들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Angst 라는 독일어는 19세기 중반 무렵 ‘공포; 두려움; 죄의식; 후회’라는 뜻이었다. 이말은 이제 영어로도 쓰인다.

 

 'ang'이라는 어두(語頭)는 고대영어에서 '좁다'는 의미였다. 길이 좁으면 통행이 불편하지 않겠는가. 자고로 사람들은 서로의 스페이스를 넉넉하게 영위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숨이 고르지 못하고 기도(氣道)가 답답할 때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양키건 우리건 '앙(앵)'’에 해당한다. 우리말의 '앵돌아지다'는 표현도 골이 났다는 뜻이렸다.

 

 분노가 지나치면 'wrath'라 하는데 문학에 관심이 지대한 당신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기억하겠지. 고대 독일어에서는 'wrath'는 'strength'와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쓰였다. 분노하면 힘이 생기는 법이다.

 

 이쯤해서 당신에게 좀 엉뚱한 소리를 해야겠다. 17 세기에 희랍어로 'orge'는 '분노'라는 의미였다. 'orge'와 말뿌리가 같은 불어의 'orgasme'와 희랍어의 'orgasmos' 에서 1684년에 'orgasm'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탄생한 것이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분노에서 힘이 생기고 성적 클라이맥스를 야기시키는 인간의 동물학적 관찰이 좀 재미 있지 않은가.


© 서 량 2008.04.14
--뉴욕중앙일보 2008년 4월 16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