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방패연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보다
더 새파랗게 어린 나이였을 때
나는 철부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내 자식이
얽히고설킨 씨앗이 이어지는 별하늘로
이윽고 불어오는 겨울 바람
아버지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내 앞에서 방패연을 만드신다, 창호지에
창호지에 달라붙은 대나무
뾰족뾰족한 잔뼈, 잔뼈
연을 띄운다
등골 시린 지구 끄트머리에서
연신 요동질 치는 연줄, 가느다란 실
그러나 어느새 실이 끊어져, 툭 끊어져
옆집 마당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사뭇
바람결에 흔들리는 반투명 젖빛 창호지
내 아버지의 사각형 방패연
시작 노트:
유년기의 향수심이 트라우마를 능가하는 것 같다. 힘겨운 기억을 솎아낸 과거는 아름다운 과거로 변천한다. 지금도 겨울 하늘에 점잖게 군림하던 아버지의 방패연을 떠올리면 마음이 참 든든해진다.
© 서 량 2007.06.29
<詩로 여는 세상> 2008년 가을호, 신작 소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