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아만다의 나쁜 버릇

서 량 2008. 6. 10. 07:45

23살 짜리 고등학교 중퇴자 아만다는 심통이 나거나 우울하면 지 손목이며 하박근의 토실토실한 부분을 면도날로 긁는 버릇이 있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처절한 실연을 당한 금발의 머리 나쁜 여주인공이 욕조에 들어가서 왼손 동맥을 깊숙이 자르고 성공적으로 죽는 자살이 아니라 날도 무딘 면도날로 지 살을 각죽각죽 긁어서 피만 조금 나오게 하는 거야. 그래서 뚝뚝 떨어지는 지 피를 보면 그렇게 살맛이 난대. 팔목과 팔에 미세한 상처 투성이야, 얼굴도 반반한 이태리계 애가. 새카만 눈동자가 거진 눈알을 꽉 채운 듯한 아슬아슬하게 귀여운 이 뚱뚱보 계집애는.

 

얘의 전 정신과 의사도 또 그렇게 무지하게 뚱뚱했대요. 그러면서 아만다가 자꾸 자해행위를 하는 건 우울증 때문이라면서 좀 독한 항우울제를 디립다 처방했더니, 이것 봐, 당신 내말 못믿어도 할 수 없어. 아만다가 거진 매일 밤을 면도날로 팔도 긁고 그것도 모잘라서 허벅지도 북북 긁고 그랬다는 거야. 게다가 자기가 우울한 건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아서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땡깡을 부린 거야. 새벽 3시에.

 

아만다 어머니가 인근 의사들에게서 내 소문을 좀 듣고 지 딸을 데려온 거야. 내가 즉설주왈, 나는 항우울제를 당장에 끊겠다. 그 대신에 진정제를 처방할 것이며,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니가 또 그 따위 자해행위를 하면 너와 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끊겠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명심해서 듣거라. 니가 니 몸에 칼을 대는 건 아주 고약하고 나쁜 버릇이다. 담배피는 짓보다 더 고약한 버릇이고 고급 레스트랑에서 크게 방귀를 펑펑 뀌는 행동보다 더 용서 못할 습관이다. 그러니 내 치료법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 생각해 보고 마음이 있으면 다시 와라. 마음에 안 들면 오지 말거라. 했지.

 

머리 나쁜 의사들은 환자들이 지랄스러운 행동을 하면 그게 글쎄 다 우울증 증세라고 하니 내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야. 도독질도 우둘증 증세고 살인도 우울증이고 공금횡령도 우울증이래.

 

아, 그건 그렇고. 아만다는 벌써 근 2년이 지나도록 지 몸에 칼을 안 댔다는 거 당신 알아? 웃겨 근데. 자기 보다 25살 많은 동네 이발사하고 연애를 하고 같이 알콩달콩 살아. 보이프렌드 이발사 면도는 꼭 지가 해주는 거 있지. 아직도 면도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야. 걔 뚱뚱한 몸매는 그냥 그대로야. 요새는 나하고 좀 흉허물이 없어졌다고 날 만나면 입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쌍소리가 나오는 거야. 그것도 걸쭉하게. 어쨋던 아만다는 이제 더 이상 지 몸에 칼을 대지 않는 정상인이 됐어. 당신이나 나 같은 정상인 말이지. 킥킥.

 

© 서 량 200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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