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은 20대 후반 흑인 미혼 여성인데 마침 또 조울증 환자야
좀 정도가 심해 당신도 아마 알 거야 조울증이란 기쁨과 슬픔이 교대교대로
바뀐다는 뜻이지 말이 쉽지 그게 지 마음대로 안 돼요 내가 몇 년전 부터
니콜에게 말하기를 슬픔을 견디어 내는 것이 기쁨을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안전하다고 했어 겉으로 표시는 안해도 나 사실 니콜을 좀 좋아해 킥킥
마치도 슬픔은 물 같아서 수영을 못해서 물에 빠져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물 속에서 놀기도 하고 물장구도 칠 수 있다 했거든
이 싯점에서 말이 좀 어려워지지만, 그러나 지나친 기쁨은
불 같아서, 아이구~ 불 속에 뛰어들면 데어요 데어 죽어요
대신에 자기 몸을 태우면서 남들을 따스하게 해 준다는 미치광스러운 논리가
있기는 하지만, 요새 세상에 남을 위해서 자기를 불태운다는 건 말도 안돼
당신도 양심이 있으면 잘 생각해 봐요 킥킥 왜 남을 데우려고 지 몸에 불을 붙혀, 미쳤어?
근데 한달 전에 니콜은 너무나 자기의 감정이 뜨거운 것을 견딜 수 없고
그 감정을 남들에게 전해주는 수단으로 뉴욕 북부 소도시 공립 도서관에 가서 지 몸에
휘발유를 약간, 아주 약간 붓고 라이터 불을 켯다는 거라 자기의 뜨거운 기쁨을
남과 나누고 싶은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거라
요새 니콜은 내가 좀 독한 약을 처방 했더니 기가 팍 죽어 있다
내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데 저 자신은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나를 볼 때마다
자기 기분을 기쁘게 만들어 놓으라는 거지
마종기 시인의 시에 인생은 '열광'이라는 문귀가 들어가는 시가 있어
히히 나도 물론 열광하기 위해서 사는 거라고 당신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어요
단지 나와 니콜과의 차이는 나는 굳이 공립 도서관 앞에 가서
몸에 휘발유를 뿌리면서 열광하고 싶지 않다는 거
그리고 보니 내 열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열광이라고 봐야겠다
당신의 열광처럼, 안 그래?
© 서 량 200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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