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로렌스의 고통

서 량 2008. 2. 25. 08:20

40대 중반 로렌스는 얼른 보면 흑인처럼 보이고

어찌보면 동양사람처럼 보이면서 혹시 살결이 까무잡잡한 백인, 이를테면

부모 중에 하나가 중동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놈이다.

너무 피부색을 언급해서 당신한테 좀 어떨지 모르지만 내 얘기를 들어 봐.

 

로렌스는 아버지가 흑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여자야.

로렌스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년 동안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어떤 몸매 날씬한 일본여자와 눈이 맞았다는 거지. 뭐 대단한 얘기도 아니야.

어쨌든 혈기왕성한 이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나서 로렌스는 애비의 임기가 끝난 다음

미국으로 돌아왔지.

 

근데 로렌스 애비가 지 여편네를 자꾸 주어패기 시작한 거 있지.

당신도 영화에서 봤지. 왜 그 섹시한 기모노 의상을 입고 궁둥이를 삐뚤빼뚤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바로 그 일본여자 말이야. 그런 여자를 주먹으로 패기 시작한 거야.

 

일본여자는 로렌스가 여섯 살때 어느 날 새벽 남편의 집을 탈출해서 미시시피에서

모자가 뉴욕행 뻐스를 탄 거야. 어때. 내 얘기 좀 재미있지 않아?

 

로렌스는 30살 좀 넘어 흑인여자와의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이 끝난 그 이듬해에 편도선 암에 걸렸대.

세상에 세상에 나도 의사지만 편도선 암에 걸렸다는 사람은 처음이야. 책에서는 읽었지만.

그 희귀한 편도선 암을 수술하기는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걸핏하면 폐렴이 걸리는 거야.

 

그래서 그놈은 어찌어찌 내 환자가 됐다.

이놈이 날 보자마자 유창한 본토 영어로 글쎄 날 보고 일본사람이냐구 묻는 거 있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어. 그랬더니 중국인? 하는 거야. 내 고상한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어. 사실은 나도 성미가 더럽고 급하거든. 야 이 x할 놈아. 왜 너는 코리안 생각을

못하고 꼭 그렇게 차이니스부터 언급을 해야 되냐 했지.

 

그랬더니 이놈이 금방 안색이 달라지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 알아? 사실은 자기 어머니가

한국사람이었다는 거야. 근데 지 에미가 신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밝히면 일본에서

차별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일본 사람으로 평생을 지냈다는 얘기를 요 얼마 몇달 전에 들었대.

 

걱정하지 말아요. 나 크게 흥분하지 않았어. 당신을 향해서 마음 푹 놓고

하고 싶은 말을 미주알고주알 그냥 되는 대로 � 본 것 뿐이야. 

 

© 서 량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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