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앤소니의 노이로제

서 량 2008. 6. 20. 06:56

 

자기 형과 말다툼을 하다가 야구방망이로 형을 두둘겨패고

징역을 6개월 살고 나온, 나보다 3살 위 앤소니가 오늘 내게 두 가지의 걱정거리에 대하여 말했어.

 

첫째 자기는 차를 운전하기 전에 꼭 차를

한 바퀴 돌아 보고 나서야 차문을 연다는 거라.

차를 한 바퀴 돌아보는 이유인즉 주차를 했던 사이에 혹시 타이어에 펑크가 나지 않았나를

검사해야 된대. 앤소니는 아무런 생각 없이 타이어를 점검하지 않고 차 발동을

거는 사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아주 진실로 진실로 하는 말이였어. 그러면서

나에게 차 발동을 걸기 전에 차 타이어 네 개를 쓱 한 번 점검하느냐 하며 묻길래, 솔직히

너무 정신이 없고 바빠서 그렇지 않는다 했지. 그랬더니 정신과의사가 그렇게 용의주도하지 못해서

어쩌겠다는 거냐구 따지는 거 있지. 만약에 어떤 미친 놈이 내게 앙심을 품고 타이어를 일부러 칼로

찢어서 펑크를 냈으면 어쩔거냐는 거야. 아이구, 참. 일 순간 그 놈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대.

 

그놈은 노이로제가 하나 더 있었어. 그건 즉 자기가 노안(老眼)이 심해져서 비싼 돈을 주고

눈 검사를 하고 처방을 받은 안경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서랍 속에 모셔 두기만 한다는 거야.

그 이유? 당신 지금 그 이유가 궁금해 죽겠지? 큭큭. 그 이유가 아주 그럴 듯해. 내 말좀 들어 봐요.

 

그 비싼 얀경을 처음에 썼다 벗었다 하다가 한 번은 침대 위에 안경을 벗어 놓은 걸

깜박 잊고 그 안경 위에 떠억 앉았다는 거라. 안경이 묵사발이 난 거지.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그래서 그 안경을 안경집에 가져 가서 다시 애써 고쳐 오고 난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 안경을 사용하지 않는대. 그 대신 처방전 없이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하나에 1불인지 하는 싸구려 돋보기 안경을 사서 책을 읽을 때 쓴대나. 근데 말이야

그 싸구려 안경도 벌써 몇 번을 깔고 앉았다는 거야. 그럼 어떡해. 또 사오고. 또 사오고 하지.

 

그러니 앤소니는 안경 위에 주저앉는 짓을 자꾸자꾸 하다 보니

그 비싼 처방안경을 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거야 .

보나마나 또 안경을 침대 위에 벗어 놓고 떠억 깔고 앉을텐데.

싸구려 안경이건 값비싼 안경이건 자꾸 깔고 뭉개기는 마찬가지 아니야?

 

나도 사실은 세수하려고 안경을 무심코 침대 위에 벗어 놓았다가 얼굴을 닦으면서

점잖게 안경을 깔고 앉은 적이 한 번 있었어. 이거 아무한테나 할 말이 아니야.

물론 그때 묵사발이 된 안경을 고칠려고 별의 별짓을 다 했지.

그래서 사실을 나도 안경 노이로제가 있기는 한데 말이지.

근데 나는 그 다음 부터 안경을 벗을 때마다 문자 그대로 부들부들 떨어.

물론 죽었다 깨어나도 침대 위에 안경을 벗어 놓지 않지. 몰라. 혹시 나 또 그럴래나. 

 

© 서 량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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