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늘
육체를 다스리는 풍습에 젖는다
열 손가락으로 광! 광! 두들기는
말초신경의 뻔뻔함으로
육체를 거부하는 생리를 잘 알고 있는
피아노 치는 여자는
검정 속옷과 스타킹
어지러운 손가락 놀림
발밑에 눌리는 소프트 페달만으로
피아노는 충분히 남자의 함정이다
피아노 치는 여자 목 아래로 푹 파여 있는
아늑한 함정이다
육체는 육체끼리
영혼은 영혼끼리
따로 떨어진 연습실에서 음계연습을 한다
머리를 잘 빗지 않는 남자를
자신에게 단단하게 묶어 두기 위하여
오늘도 밤늦도록 피아노 치는 여자여
이룰 수 없는 사랑,
저 싱싱한 페미니즘이 붉은 피를 흘릴 때
슬며시 고개를 드는 휴머니즘을 위하여
나를 때려 다오, 피아노 치는 여자여
여지 없이 나를 발로 짓눌러 다오
새까만 그랜드 피아노 소프트 페달처럼
* 피아노 치는 여자 -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1946~)의 대표작 소설 제목
시작 노트:
옛날에 쓴 시의 모티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가 일회용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내 아들이 남처럼 보이듯이 내 시가 남의 시처럼 느껴진다.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에 홀딱 반해서 이 시를 쓴것 같다. 비엔나 컨서버토리에서 올간 전문으로 졸업했지만 평소에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했던 그녀. 비엔나 대학에서 음악역사학을 공부하다가 한때 불안장애증으로 학업을 중단한 적도 있다. 근 20년을 공산당원으로 지내기도 했던 그녀에게 수여된 2004년 노벨 문학상은 “소설과 희곡 속에서 상투어와 그 압제적 통제력이 지배하는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엄청난 언어의 열정으로 밝혀내는 목소리와 그 반대 목소리의 음악적인 흐름”이라고 그녀를 치하했다. 18년 전에 이 시를 쓰면서 인간 속에 내재한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가학피학성性愛)을 선명하게 묘사한 그녀에게 깜짝 놀랐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언제 시간을 내서 유튜브에 있는 프랑스 영화 'The Piano Teacher'를 봐야겠다. 참참, 원본 제목은 '피아노 치는 여자'가 아니라 '피아노 선생'이었다.
© 서 량 2005.02.09 -- 세 번째 시집 <푸른 절벽>(도서출판 황금알, 2007)에서
푸른 절벽 - 교보문고
서량 시집 | 1994년 「조선문학」으로 등단한 서량 시집. 정신과의사인 그가 시의 상당 분량을 정신과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를 취급하고 있다. 또한, 항상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객관적인 표현에 주
www.kyobobook.co.kr
'발표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두 개의 색소폰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 (0) | 2022.06.07 |
---|---|
|詩| 꿈, 생시, 혹은 손가락 (0) | 2022.05.20 |
|詩| 간장에 비친 얼굴 (0) | 2022.03.20 |
|詩| 지독한 에코 (0) | 2022.03.19 |
|詩| 꽃에 관한 최근 소식 (0) | 2022.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