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7. 남남북녀 유감

서 량 2008. 5. 24. 00:32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다.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가 좋다는 뜻.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남쪽 여자들과 북쪽 남자들은 깊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다.

 북쪽 사람들은 태양광선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여 피부가 하얗다. 북유럽인들의 희디 흰 살결을 눈에 그려 보면 금방 알 것이다. 반면에 햇살이 풍족한 남쪽 사람들은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처럼 살결이 가무잡잡하리라. 남남북녀의 이치를 이렇게 피부학적으로 해석하면 여자란 모름지기 얼굴이 달처럼 하얗고 남자는 바위처럼 검어야 좋다는 편견에서 온 속담이 아닌가 싶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아침해는 무거운 몸을 잠시 나뭇가지에서 쉬었다 간다. 그래서인지 동녘 동(東)은 나무 목(木)에 해(日)가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지금부터 1500년경 전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달마가 머나먼 여행에 올랐던 테마를 울거먹는 화두(話頭)에서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한다. 절대로 '달마가 북동쪽으로 온 까닭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북'쪽을 입에 담기를 꺼려 한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건너 앞산이 북망이었네' 하는 구슬픈 상여꾼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딸그랑거리는 요령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지면서 친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상제들의 울음소리를 당신은 접해 본 적이 있는가. 이때 북망(北邙)은 북쪽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그렇듯 우리의 북쪽은 춥고 서글픈 망자의 처소였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양키들이 동쪽을 향해 섰을 때 북쪽은 왼쪽을 의미했기 때문에 고대영어에서 'nerth(현대어 north)'는 왼쪽이라는 뜻이었고 왼쪽은 나쁘고 사악하다는 의미였다. 같은 어원의 고대 범어 'narakah'는 '지옥'을 뜻했다. 옥편에도 '북녘 북(北)'은 '패하다; 달아나다; 저버리다'라고 부정적으로 풀이한다.

 'east'는 고대영어에서 '새벽'이라는 뜻이었다.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East of Eden)'도 인류의 평화가 깨지는 새벽을 암시하는 제목이었고 형제간의 동족상잔을 묘사한 뼈아픈 각성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이렇게 동쪽은 서쪽을 앞서 간다.

 서(西)는 새(鳥)가 네모로 생긴 틀 안에서 둥지를 트는 모습으로 창공을 날던 새가 날개를 접는 시간을 뜻한다. 'west'도 고대 독일어와 범어에서 '해가 지는 곳'을 지칭했다. 해가 질 때쯤 해서 우리는 하나같이 하루를 마감하는 초조함과 열기에 사무치기 마련인 것을. 그래서인지 멋진 카우보이 모자를 쓴 서부의 개척자들은 이판사판의 용기가 치솟았던 것이다.

 

 해가 지는 시간은 저녁 노을처럼 예민하고 강렬하다. 동양이 조용한 아침의 설레임이라면 서양은 뒤늦게 솟구치는 생의 열망을 대변한다. 인류는 아침의 희망에 부풀었다가 오후쯤에 뜨겁게 절망한다.

 남(南)은 울타리 안에 양(羊)을 키운다는 의미에서 왔다. 영어로 'south'는 고대불어의 'sud'와 뿌리를 같이하면서 'sun(해)'와 연관된 말이다. 남쪽은 햇볕이 많은 따스한 장소이다. 당신도 나도 따스한 남향집에서 살고 싶다.

 밝음을 숭배하는 우리의 편견은 동쪽과 남쪽에 치우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허둥지둥 찾아 다니는 파라다이스란 알고 보면 동남쪽에 위치함이 틀림없다.

 이런 이론이라면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운이 좋은 땅은 경상도라는 말이 된다. 손바닥만한 한반도의 북부와 서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한참 억울해 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지. 내친 김에 하는 말이지만, 한반도에서 중부지역 출신의 대통령이 우리를 이끈 적이 언제였던가. '남남북녀'에서처럼 남쪽 남자가 출중하다는 말이 백번 맞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남쪽 남자들 만세!


© 서 량 2008.02.05
--뉴욕중앙일보 2008년 2월 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